한강 선생님들께,
안녕하십니까? 염형철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중복 지나고 한여름에 접어드니 연일 푹푹 찌는 날씨입니다. 저는 이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낮에 샛강을 좀 걸었습니다. 이제는 나무들이 제법 그늘을 만들어주어 땡볕을 피하며 걸을 만합니다.
뭐가 바쁜지 이일 저일 하고 사느라 운동도 못하고 지내온 게 몇 년입니다. 그러니 자꾸 올챙이처럼 배만 나오네요. 이제는 기회가 닿는 대로 걷기라도 하자 싶어 샛강을 둘러봅니다.
한낮이라 그런지 걷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한적하니 숲의 소리에 온전히 집중하며 천천히 걷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구름이 예쁘게 보입니다. 하얀 뭉게구름이 몽실몽실 피어올라 천천히 움직이네요. (요즘 인기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는 고래 모양 구름도 찾았습니다.) 미지근한 열기를 품고 있지만 바람도 제법 붑니다.
이런 걸 보연 자연은 어느 때라도 좋구나 싶습니다. 한낮에 걸은 덕분에 고운 하늘과 뭉게구름을 실컷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나무와 갈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가 얼마나 고마운지도 알겠습니다. 다른 분들처럼 저녁에 걷는다면 붉은 노을도 보고, 반짝거리는 강물에 눈길을 주게 될 것입니다. 밤에 걷는다면 풀벌레 소리, 매미 소리, 그리고 낮의 열기를 식혀내는 흙과 풀 냄새를 더 진하게 느끼겠지요.
저는 남들과 걷다가도 쓰레기를 줍거나 풀을 뽑거나 삭은 가지를 정리하곤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공원이 말쑥해서 산책로변 떨어진 잔가지를 옆으로 치우는 정도입니다. 몇 년 사이 어수선하던 여러 곳들이 많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한강조합 일꾼들과 더불어 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손길을 보탠 덕일 것입니다.
한강조합을 창립하던 4년 전만 해도 제가 지금 이 곳에 서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2018년 겨울 샛강문화다리 위에서 찬바람이 감도는 샛강을 바라보았던 때에도, 우리가 이 곳에서 이렇게 많은 땀을 흘리며 일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시민들과 함께 공원을 가꾸고, 종종 시민들에게 공원이 예뻐졌다는 칭찬을 들으며 삽니다.
거창하게 세상을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면 되지 않겠냐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한강에 오셔서 존중받았다고 느끼고, 다만 얼마라도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면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라도 한강에 오면 환대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청소년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는 선생님에게 백일홍 꽃다발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그분은 전혀 생각지 못했는지 내심 놀란 눈치였습니다. 사실 제가 요즘 뭇 여성들에게 꽃다발을 마구 안기고 있습니다. ^^ (그렇다고 염키호테인 제가 로미오로 변신해서는 아닙니다.)
올 봄에 옥상 정원에 씨앗을 뿌려 백일홍을 키웠습니다. 무던한 백일홍은 잘 자라주어 제법 많은 꽃을 피웠습니다. 덕분에 올 여름 내내 행사가 있을 때마다 테이블을 장식하고, 오신 분들에게 꽃다발을 만들어 드릴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8월부터는 한강조합에서 풀타임 근무로 전환합니다. 그동안 대학 출강과 지난 3년간의 국가물관리위원회 간사위원 역할로 한강에서 주5일 근무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오롯이 한강에 집중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창립 때부터 한강의 손을 잡아주신 분들, 중간에 저희 활동을 좋게 보시고 합류해주시는 분들, 또 앞으로 한강에 오실 분들, 두루 감사드리고 환영합니다. 앞으로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또 저를 불러주시면 어디든 달려가겠습니다. 은미대표가 염키호테라고 저를 부르듯이, 이제 힘차게 말달려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무더위에 건강 잘 지키시고, 코로나도 조심하십시오.
2022.07.30 토요일 저녁에
염형철 드림
(‘형철의 마음’을 은미씨가 상상하고 쓴 편지입니다. 염키호테 님이 곧잘 쓰는 단어들이 있는데 ‘제법’ ‘어수선’ 같은 말들입니다. 편지에 몇 번 넣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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