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산책하다가 여의교 인근 샛강변의 네군도단풍나무를 보았습니다.
비슷한 몸집의 버드나무와 함께 샛강을 내려다보며 수십 년을 살아온 네군도단풍나무는 둘이서 오랜 친구처럼 자리를 지켜온 나무입니다. 세월의 더께만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 같은 이 나무는 그러나 밑동과 뿌리를 드러낸 속절없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한참 서서 아직은 숨을 쉬고 있을 것만 같은 나무에 손을 대고 나무의 온기를 찾으려 했습니다.
나무들에게도 힘든 여름이었습니다. 여러 차례에 걸친 폭우와 홍수로 나무들은 기력이 약해졌습니다. 몇몇은 네군도단풍처럼 무너졌고, 몇몇은 기우뚱 기울어져 옆의 나무에 의탁하고 있습니다. 어린 팽나무나 벚나무 몇몇은 죽어 버렸고, 멀리 뻗은 굵은 가지가 부러진 나무들도 있었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습니다. 기어이 다시 피어난 쑥부쟁이와 벌써 꽃을 피운 갈대, 그리고 여기저기서 생기 넘치는 인사를 건네는 나무의 새잎들을 봅니다.
“살다 보민 살아 진다.” (살다 보면 살아갈 수 있다).
제주도 어머니들이 하던 말을 숲에서 떠올립니다.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부여잡고 살다 보면 살아갈 수 있다는, 꾸역꾸역 희망을 일깨우는 말… 샛강 버드나무에게도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태풍 힌남노, 제주도를 지나며 북상할 것으로 예상되는 무시무시한 태풍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샛강에는 종일 줄기찬 비가 내리며 태풍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저는 나무들을 걱정하며 마음을 종종거립니다.
잦은 침수로 인해 뿌리도 약해지고 기력이 쇠해진 나무들… 이제 차차 기지개를 켜보고 땅의 기운을 모아 발돋움하기 바쁜데, 거대한 태풍이 온다고 합니다. 태풍이 숲을 할퀴고 지나가면 나무들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거칠게 나무의 팔과 다리, 몸통과 뿌리를 흔들어 댈 태풍 앞에서 나무들은 얼마나 잘 견딜 수 있을까요.
샛강 나무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때로 어려운 일들은 몰려오기도 한다고. 그렇지만 땅을 단단히 부여잡고, 옆의 나무들과 손을 잡고 잘 버텨 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잘 견디고, 휘엉청 달이 높이 솟는 한가위 밤을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풀벌레 소리, 갈대 스치는 소리 들으며 달빛 아래 아늑한 잠을 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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