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야. 자연은 살아있다. 알았지?”
곶자왈 숲길을 걷기 시작하며 은희언니가 말했습니다. 언니는 맨발로 걷습니다. 걸음이 빠른 편인 제가 앞섰습니다. 아침나절 제주 무릉리 곶자왈 숲은 가을 풀벌레 소리만 들려오고 조용합니다.
만년의 세월을 숨쉬어 온 곶자왈에서는 나무와 돌, 이끼와 풀들이 서로 이어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을 햇살은 숲 가장자리에서 찰랑거리고 나무들 아래 그늘은 그윽하고 깊습니다.
“그거 봐. 자연은 살아있다고 했지? 뒤를 봐.”
몇 분이나 걸었을까, 언니의 목소리가 커집니다. 얼른 뒤를 봅니다. 뱀! 그것도 독사가 스르르 옆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걷는 작은 길에 독사가 나와 있었던 것을 몰랐습니다. (꼬리라도 밟았으면 어땠을까요. 생각만해도 으스스합니다.)
은희언니는 어릴 적에 독사에 물린 적이 있어요. 몇 번이고 그 이야기를 들어서 우리 가족들은 그 때 상황을 다들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작고 여린 몸집의 아이였던 언니는 큰언니를 따라 들판을 가고 있었습니다. 제주에서 흔한 밭 사이 경계 무너진 돌담을 큰언니가 먼저 지났고 작은 아이였던 언니는 뒤쳐진 것이 마음이 급해 부리나케 쫓아갑니다. 돌담에는 가시덤불 같은 것이 있었는데 미처 볼 새도 없이 깡총 뛰어넘습니다. 그 순간 찌릿한 통증이 발목을 관통합니다.
가시덤불로 알았던 것은 똬리를 튼 독사였습니다. 종아리는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고 언니는 울며 큰언니를 부릅니다. 이처럼 어린 시절 뱀에 물린 기억이 있는 언니가 어쩐 일인지 독사를 봐도 태연합니다.
“가던 길 가라.” 언니는 뱀에게 그런 말도 던집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시 걷는데 이번에는 앞에서 기척이 느껴집니다. 한 10미터 앞쪽에 노루가 지나다가 우리를 쳐다보는 것이었어요. 우리는 다시 걸음을 멈춥니다.
“우리 나쁜 사람 아냐. 괜찮아.”
언니는 노루에게도 말을 겁니다. 노루를 가까이서 더 보고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노루는 몇 초 힐끔거리며 쳐다보더니 겅중겅중 뛰어서 숲 안으로 들어갔어요. 이날 한 시간 정도 산책에서 뱀은 두 마리, 노루는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언니가 “자연은 살아있다”라고 조심하라고 한 말이 경험에서 나온 말이었어요. 매일같이 맨발 산책을 하는 언니는 뱀이나 노루를 보는 일이 흔하다고 합니다.
샛강에도 뱀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뉴스를 보면 한강공원 곳곳에서 뱀이 출몰하고 있다고 하네요. 뱀들은 한 보름 정도 지나면 동면에 들어갈 텐데, 그 전까지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행여 뱀을 보더라도, 시비를 걸거나 건드리지 마세요. 그냥 조용히 지나가라고 멈춰 선다면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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