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어두운 밤하늘에 가득 덮인 먹구름이
밤새 당신 머리를 짓누르고 간 아침
나는 여기 멀리 해가 뜨는 새벽강에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얼굴을 씻고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과 또 당신 이름과
그 텅 빈 거리를 생각하오.’
(정태춘 노래 ‘북한강에서’ 일부)
북한강에서 너를 생각한다.
나는 이 아침 북한강에서 고요히 흐르는 강물과 그 위로 부서지는 가을 햇살을 보고 있어. 정태춘의 노랫말처럼 ‘해가 뜨는 새벽강에 홀로 나와’ 찬물에 얼굴을 씻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침 강가에는 하루를 시작하는 새와 나무들의 기척으로 생기가 넘쳐. 들꽃들도 아침 햇살로 세수를 마쳤는지 말갛게 피어났어.
우리들은 한 번도 같이 북한강에 오지 못했지 기껏 한겨울에 인적이 드문 한강 고수부지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검은 강물을 본 것이 다였어. 우리가 스무 살을 갓 넘긴 91년도의 겨울에. 가끔 노래방에 가면 너는 언제나 이 노래 ‘북한강에서’를 불렀어. 그리고 시간이 좀더 있으면 내처 ‘떠나가는 배’도 불렀지. 우리들은 어쩐 일인지 그 나이에도 서태지 같은 가수들 노래를 따라 부르지 못하고 정태춘 박은옥의 노래를 더 좋아했지.
너는 제주도 중산간 마을인 저지리에서, 나는 낙천리에서 자랐고 우리는 같은 중학교를 다녔어. 그리고 스물이 넘어 유학을 와서 서울살이를 시작했지. 나로서는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 속에서 모래알처럼 서걱거리며 우울하게 지내던 시절이었어. 그 때 가끔 네가 찾아와서 하릴없이 자동차로 가득 찬 거리를 함께 걸었지. 그리고 겨울에는 한강에도 나가 보았고. 우리들은 바다 대신 강가에라도 가서 시원한 바람과 자연을 느끼고 싶어했어. 겨울 고수부지는 황량했고, 우동과 김밥을 파는 낡은 버스도 닫혀 있었어. 그래도 네가 같이 걸어준 거리와 겨울 강가 덕에 나는 덜 외로웠어.
양평 북한강에서 카약을 탔어. 50명 정도 사람들과 같이 왔어. 좀 일찍 도착한 나는 그곳 사람들이 내려준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강물을 바라볼 수 있었어. 운이 좋아 수면 위로 뛰는 물고기도 얼핏 보았지.
강과 이어져 있는 갈산공원이라는 곳이 있어. 이곳을 아끼는 사람들이 ‘갈산공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더라. 오늘은 그 단체와 함께 카약을 타서 강의 부유 쓰레기를 줍고 강길 트레킹을 하러 온 거야. 카약은 1인용과 2인용이 있는데, 나는 1인용을 골랐어. 생각과 달리 꽤 안전해 보였거든. 호젓하게 강을 만나고 싶어 혼자 탔어. 나는 강 풍경을 바라보느라 다른 사람들처럼 쓰레기를 열심히 줍지는 않았어. 대신 너를 떠올렸지. 30년 전 ‘북한강에서’ 노래를 부르던 너를. 너와 같이 이 강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
흘러가고 흘러온 세월과, 강물처럼 더러 체념과 순응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인생과,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무뚝뚝하지만 다정한 마음을 지닌 너를 생각해. 강 위에서 나도 정태춘의 노래를 조용히 읊조려 본다.
‘아주 우울한 나날들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 때
우리 이젠 새벽강을 보러 떠나오.
과거로 되돌아가듯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 처음처럼 신선한 새벽이 있소.
흘러가도 또 오는 시간과
언제나 새로운 그 강물에 발을 담그면
강가에는 안개가 안개가 천천히 걷힐 거요.’
(한강조합은 11월 26일, 27일, 29일 양평 갈산공원으로 떠나는 ‘강을 위한 가치 여행’을 마련했습니다. 저는 내일 26일 가는데, 미리 내일 여행을 상상하며 편지를 써보았습니다. 양평 갈산공원은 사실 남한강변에 있는데 북한강과 지척이라 생각의 나래를 두 강이 만나는 지점까지 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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