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wn by the sally gardens
이제 가을도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합니다.
지난 주말에 비까지 내려서 나무들을 뒤흔든 까닭에 단풍 든 낙엽들이 발 아래 수북하네요.
샛강센터가 있는 윤중로에는 벚나무가 길가에 면해 서 있는데 노란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진 벚나무 잎들이 길을 덮고 있어요. 샛강센터를 향해 걸을 때마다 속으로 이걸 쓸어야 할까 둬야 할까 생각하기도 해요. 저는 그냥 두는 편을 택합니다. 어쩌다 보니 듬뿍 누리지 못했던 올 가을, 단풍 든 잎을 떨구는 나무들이라도 실컷 보자는 심사입니다.
아직 춥지 않고 걷기가 좋아 지난 며칠 샛강에도 손님들이 자주 왔습니다. 그 중에 금요일 낮에 온 한겨레신문사 기자님들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30분 정도 샛강 산책을 하고 이후 노량진 부근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 모양입니다. 제가 어쩌다 탐방 안내자로 낙점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3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고, 그들은 안내나 설명보다 그냥 숲 길을 걸어가며 주변 구경하는 것이 소풍이고 힐링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자 고민이 되었습니다. 안내자라고 가이드 마이크까지 준비했는데 무슨 안내를 하지? 평소 재미있는 가이드 기술을 익혀두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기도 했습니다. 제가 곧잘 하는 시 낭송을 할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성큼성큼 숲길을 지나가고 싶은 이들에게 시는 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힙합을 즐기는 이들에게 조선시대 정가를 들려주는 느낌이랄까요.
결국 평이하게 나무 이야기 조금, 수달 이야기 조금, 샛강 이야기 조금 뒤섞어 말하며 함께 걸어간 것이 다였습니다.
제가 샛강 안내 시 곧잘 낭송하는 시는 예이츠의 <버드나무 정원 아래서 down by the sally gardens>. 봄이나 여름철의 낭창낭창 늘어진 버드나무 아래서 이 시를 읽으면 아주 잘 어울리죠. 젊은 시절 사랑에 대한 회한이 가득 담긴 시니까요. 그런데 어쩐지 늦가을에는 어울리지 않는데, 저는 하고 많은 시 중에서 왜 자꾸 이 시만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염두에 둬서 그럴까요. 클래식 라디오에서는 이 시로 만든 노래가 꽤 자주 들립니다. 지난 주말 이후에도 라디오에서 한 번 들었어요. 그러니까 지금 이 가을에도 어울리는 시라는 뜻일까요?
#생태문학과 샛강
‘내가 숲에 들어간 이유는 삶의 본질적인 진실만을 대면하기 위해 한번 의도적으로 살아보고 싶어서였다. 삶에서 배워야만 하는 것을 과연 내가 배울 수 있는지 보기 위해서, 그래서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 내가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에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샛숲학교에서 열린 박혜영 교수님의 생태문학 수업이 끝났습니다. 숲 속에서 자립하는 삶을 살았던 소로의 실험은 지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저는 이번에 박혜영 교수님의 <느낌의 0도>를 읽으며 두루 공감했는데, 특히 아룬다티 로이가 <9월이여, 오라>에서 한 말이 인상적입니다. 작가들은 흔히 이 세상에서 무엇을 쓸지 자기들이 고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산과 강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줄 작가를 고른다고요.
샛강을 걷고 또 걸으며, 멈춰 서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거나 억새가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샛강은 나를 선택해줄까? 그 많은 이야기를 대신 전달할 심부름꾼으로서 샛강이 나에게 말을 걸어줄까? 그런 선택을 받으려면 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최근에 샛강에서는 어린 수달들의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저희가 설치한 센서 카메라에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데요. 조만간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샛강에 사는 수달 가족도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대변자로 저를 선택해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그런 생각을 하며 갈대와 억새, 달뿌리풀이 어울려 흔들리는 오솔길을 걸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