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 (小雪)이었습니다. 서울에는 첫눈이 내릴 기미는 없었고 다만 흐린 날이었습니다.
겨울을 앞두고 나무들이 더 서둘러 잎을 떨굽니다. 황금빛 뽕나무 낙엽이 길 아래 수북합니다. 문득 고등학교 때 프랑스어 선생님이 가르쳐준 노래 ‘고엽 (Les Feuilles Mortes)이 떠올라 흥얼거려 봅니다.
요즘은 하루에 한 번쯤은 잠깐이라도 샛강 숲으로 내려가보려고 합니다. 부족한 걷기를 좀 보충하겠다는 마음도 있고, 숲의 변화를 가까이서 느끼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 사무실에 앉아 샛강을 위해 이런저런 문서를 쓰고 일을 하면서도, 정작 보배처럼 옆에 있는 샛강숲을 몇 발짝 걷지도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죠.
샛강을 거닐면 매일 새로운 것들을 보게 됩니다. 어제는 수달광장 앞에 있는 손바닥만한 작은 연못에 청둥오리 세 쌍이 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벌써 오리들이 겨울을 나려고 날아온 것도 반가웠지만, 암수 각각 세 마리씩 여섯 마리가 연못에서 합동 데이트라도 하는 것 같아 한참 구경했습니다.
달뿌리평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더니 이용태 팀장님이 몇몇 자원봉사자들과 걸어오는 게 보입니다. 가까이 가서 인사를 하는데 태국 젊은이 넷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에 여행 와서 자원봉사까지 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하며 직접 체험해보고자 아예 자원봉사를 신청한 것이었어요.
“안녕하세요. 태국은 따뜻할 텐데 여기 날씨 괜찮나요?”
그들에게 인사하며 날씨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들은 날씨가 맘에 든다, 태국은 너무 습하고 덥기만 하다, 이곳은 정말 멋진 곳이다, 그런 말들을 합니다. 뽕나무 위에 앉은 까치를 보고도 손짓하며 “happy bird”라고 좋아하더군요. 그들은 샛강을 한차례 둘러보고는 어린 버드나무 묘목을 돌보는 일을 했습니다.
샛강에는 한 달에도 몇 백 명씩 자원봉사자들이 다녀갑니다. 그들 중에는 청년, 지역 주민, 학생, 직장인, 동아리나 기업 단체 자원봉사자들도 있지만 외국인들도 꽤 있습니다. 외국계 기업이어서 같이 오는 경우도 있고, 작년 프랑스인 봉사모임처럼 아예 동아리가 오는 경우도 있고, 이번처럼 외국 여행자들을 위한 자원봉사를 연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 한강조합이 샛강을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한다고는 하지만, 숲과 공원에서 하는 일이 어지간히 하지 않으면 표가 나지도 않죠. 23만평으로 워낙 공간이 크다 보니 매일 같이 해야 할 일들은 산적해 있기 마련입니다. 가끔 해야 할 일들이 쌓여 조바심이 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후 나절에 혼자 걷다 보면 절로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저처럼 행복하게 걷는 사람들을 많이 마주칩니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부드러운 흙길을 밟으며, 우아하게 서 있는 나무들 사이를 지나고, 조용히 흐르는 물길을 건너 걷는 일, 낙엽도 밟고 때로 습기가 많은 흙의 질감도 느끼고, 나무 사이를 나는 새들을 바라보며 걸음을 멈추는 일. 이런 호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샛강입니다.
곳곳에서 맨발로 걸어가는 사람들도 보이고, 깡충거리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분들, 드문드문 놓인 나무 벤치에 앉아 멍하니 쉬는 이들도 봅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이런 숲길을 만들고, 어린 나무들을 돌보고, 생태교란종이나 풀을 정리하는 일들, 그런 일들을 꾸준히 한 손길들이 있기에 누릴 수 있는 것들입니다.
멀리 태국에서 와서 샛강을 가꾸는 젊은이들, 이런 사람들의 정성과 마음이 모여 샛강이 나날이 정겨운 곳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고 있고요. 저뿐이겠습니까. 이제 겨울이 온다고 날아온 활기찬 청둥오리들 하며, 샛강에서 점점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수달까지… 가꾸는 손길들 덕에 우리들은 자연이 주는 혜택을 잘 누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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