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생태공원은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여의도 도심 한복판에 있는 숲과 강으로 이루어진 습지공원입니다. 윤중로 제방 아래 있어 낮고, 그래서 샛강숲에 있으면 아늑해요. 겨울에도 덜 춥죠. 지대가 낮아서 홍수 때는 잘 잠기는데, 지난 여름에 네 번이나 침수된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샛강숲 위로 드리워진 샛강문화다리 너머로 해가 질 때는 꽤 멋있기도 해요. 노을이 번지면 기분이 황홀해지고요. 저녁 퇴근길에 보는 달님도 운치가 있어요. 그러나 아침에 떠오르는 해는 평범하기 짝이 없어요. 제 생각에는 그래요. 동쪽 하늘을 목이 빠져라 쳐다보고 있으면 빌딩들을 겨우 올라서서 높게 드리운 나무 사이로 겨우 얼굴을 내밀거든요.
샛강을 너무나 사랑하는 그는 새해 첫 해맞이도 샛강에서 하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1년 전에도 여의못과 문화다리를 오가며 떠오르는 해를 맞았죠. 어느 장소, 어느 각도에서 잘 보이나 부지런히 확인도 했지요. 그리고 혼자 내린 결론이, 샛강은 해맞이 명소가 될 수 있다! 하는 것이었어요.
그는 ‘샛강 숲길을 걷는 사람들’ 정지환 사무국장에게 연락했어요. 같이 해돋이 행사를 기획해보자고 했죠. 매일같이 샛강을 걷고, 누구보다 샛강을 아끼는 정지환 님은 흔쾌히 응했어요. 바로 웹자보를 만들고, 현수막을 공원에 붙이고, 따끈한 백설기 떡도 오시는 분들에게 나눠준다고 100개나 맞췄어요. (결국 오신 분이 100명보다는 한참 적어 제가 떡을 여러 개 먹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새해 첫 일출 예정 시간은 7시 47분. 사람들은 7시 30분부터 여의못에 모였습니다. 주변은 어슴푸레한 시각.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다가오는데, 그중에 신석원 한강 감사님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가벼운 뜀 동작으로 다가오는데 맨발이었어요. 세상에! 그 모습이 어찌나 유쾌하고 건강해 보이던지요.
한참 기다려도 해는 보이지 않아 우리들은 새해 소원지를 종이에 적어 달고, 나무체조를 하고, 시를 낭송하고, 노래도 불렀어요. 여의못 청둥오리와 물닭들과도 새해 인사를 나눴죠. 그렇게 이제나 저제나 기다린 끝에 드디어 아이 얼굴만한 작은 해가 나무 사이로 봉긋 올라왔어요. 때는 8시 12분. 어쨌거나 첫 해니까 우리들은 환호하고 박수를 치고 해를 향해 마음 속 소원도 빌었어요. 그런 다음 샛강센터로 와서 정성껏 끓인 매생이 굴 떡국도 먹었어요.
오신 분들은 기뻐하신 것 같아요. 새해 일출을 보려면 높은 산에 올라가거나 멀리 운전해서 동해 같은 데를 가는데 무척 힘이 들죠. 그런데 일상의 공간에서 해맞이를 하니 새롭고 신선했나 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늦은 해맞이’는 새해 겸손하게 소박하게 살자는 우리들의 마음가짐과도 통했고요.
하여간 이런 발상이 가능한 데는 염키호테 님의 무한한 샛강 애정 덕분이라고 봐요.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행복하게 새해 첫 날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선생님들도 한강 애인이 되어주시면 좋겠어요. 꼭 한강이 아니라도 무방해요. 자연도 좋고, 반려동물도 좋고, 또 곁을 지켜주고 싶은 누군가의 애인도 좋겠죠. 그렇게 사랑을 주시면 또 더 큰 사랑을 받으실 테니까요.
새해 더없이 행복하시길 그리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2023.01.05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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