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선생님들께,
한두 번의 비에 꿈결같이 고운 벚꽃이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벚꽃 화사한 빛 아래 파도처럼 쏟아져 나왔던 인파도 가뭇없이 사라졌네요.
오늘은 날씨조차 쌀쌀맞기 그지없습니다. 때 이른 더운 날씨에 시원한 음료를 손에 들고 뜨거운 해를 가리며 산책하던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차가운 공기가 허공을 감도네요. 변덕스런 날씨에 사람들은 야단이지만, 가만히 보면 자연은 차분합니다. 해가 나는 날도, 바람이 부는 날도, 비가 오는 날도 조용히 견디는 것 같다고 할까요.
점심 먹고 돌아오는 길에 본 모과나무 꽃, 개나리, 명자, 라일락은 좀 추워 보이긴 했으나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올 봄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요즘 저는 도리스 레싱의 소설집을 읽고 있습니다. <19호실로 가다>라는 단편집인데, 그 중에서 표제작을 먼저 읽었어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레싱의 이 소설은 뭐라고 해야 할까요. 우선 대단히 훌륭한 소설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간간이 책을 잠시 내려 놓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야기를 찬찬히 곱씹어보고 싶어서였죠. 냉소적인 위트가 담긴 말투로 부부관계와 결혼에 대해 깊은 통찰을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다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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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실을 가다>는 일찍이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던 ‘자기만의 방’이 절실히 필요했던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안정적이고 부유한 가정 생활을 유지하고 있지만, 끝없이 혼자가 되고 싶고, 혼자만의 공간이 간절했기에 모험을 감행했던 부인의 이야기지요. 결국 그녀는 그 방을 확보합니다.
‘이 방에서 수전이 뭘 했을까?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충분히 쉬고 나면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 양팔을 쭉 뻗고 미소를 지으며 밖을 내다보았다. 익명의 존재가 된 이 순간이 귀중했다. 여기서 그녀는 네 아이의 어머니, 매슈의 아내, 파크스 부인과 소피 트라우브의 고용주인 수전 롤링스가 아니었다. 친구, 교사, 상인 등과 이런저런 관계를 맺고 있는 그 수전 롤링스가 아니었다.’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 P.318 문예출판사)
코로나가 시작된 지 3년째를 맞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거리두기, 격리 따위로 많은 분들이 원치 않아도 혼자만의 방,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했지요. 저 소설 속 수전이 지금 시대에 살았다면 코로나 걸려서 혼자 자가격리를 하는 것을 선호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살며 여의샛강생태공원을 생각해 봅니다. 매일같이 샛강에 있는 저의 경우에는 이 곳에 친숙할 뿐 특별함은 잘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처음 오시는 분, 오랜만에 오시는 분들은 샛강이 매우 특별하다고 말씀하시네요. 기대하지 못했던 공간, 놀라운 곳, 걷기 좋은 곳, 도심 속 자연이 잘 살아있는 곳, 아기자기하게 잘 가꾸어진 곳…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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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위 소설 속 수전과 달리)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다 보니 샛강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는 것이 즐겁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여주에서 조합원님들이 샛강 나들이를 했어요. 샛강에서 만났기에 강에 대한 사랑과 자연에 대한 관심, 한강이 가진 꿈과 바람에 대해 두루 생생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또 지난 주에는 샛강에서 25년도 더 전에 함께 공부했던 대학동문들도 만났습니다. 그 중에 한 명은 중세 영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했는데 요즘 아서왕 이야기를 소개하는 좋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더군요. 샛강을 함께 걸으며 아서왕 이야기를 들으니 샛강에도 아서왕이 올 수 있을까, 그런 중세의 숲이 연결될 수 있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혼자만의 고독한 공간, 누군가에게는 안전하고 평안한 환대의 공간, 누군가에게는 만남의 공간, 누군가에게는 멍하니 쉬는 공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많은 상상이 펼쳐지는 공간이 됩니다.
그렇기에 샛강숲에서는 수전과 같은 사람을 위한 ‘19호실’도 만들고, 아서왕의 숲도 만들고, 치유의 쉼터도 만들고, 같이 시를 읽거나 물을 보며 멍하니 앉아 있는 사색의 장소도 만들고 싶습니다.
샛강은 넓고 넉넉합니다. 어떤 공간이 필요하신가요? 어떤 시간을 원하시나요? 저는 다 해드리고 싶습니다.
항상 평안하시길 바라며.
버드나무 흐르는 샛강 숲에서
2022.04.145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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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협동조합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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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계좌: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우리은행 1005-903-60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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