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에 KBS1 클래식 라디오의 ‘김미숙의 가정음악’을 듣습니다. 이 방송에서는 매주마다 위대한 인물들의 생애를 돌아보는 ‘마음을 읽다’ 코너가 있어요. 그동안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과 같은 작가들, 화가, 음악가, 사업가 등등 많은 사람들을 소개해왔어요. 이번 주의 인물은 윤동주입니다. 아마 삼일절이 낀 주여서 그를 소개하는가 봅니다. 스물 여섯 생애를 마친 윤동주의 삶을 안타까워하며 그의 유고 시 한 편을 낭독해주더군요. 제목은 ‘봄’입니다. <봄> 윤동주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을 참아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삼동을 참아온 나는 /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싯구에서 마음이 울컥합니다. 이 청년 시인에게 봄은, 그리고 조국의 광복은 얼마나 간절하였을까요. 그런 봄을 누리고 사는 우리는 봄을 불러와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샛강에서도 봄이 강물을 타고 흐르기도 하고, 숲 속에 이는 봄바람으로 우리 혈관으로 타고 들어오기도 합니다. 깨어나고 피어나는 생명들처럼 저 역시도 기지개를 켜봅니다. 어젯밤엔 자정 넘어 퇴근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여지껏 제 평생 일을 하며 자정 넘어 퇴근해본 것은 처음이네요.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95년 가을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한강에 오기 전에는 다국적기업과 글로벌 NGO에서 일을 했지요. 다행인지 어느 직장도 야근이나 격무와는 거리가 멀었어요. 저녁 6시를 넘겨 퇴근해본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그런 제가 어제 밤은 자정 넘어 택시를 타고 귀가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언제나 헌신적으로 일하는 동료 몇몇이 함께였어요. 다음 주에 샛강생태공원 재위탁을 위한 심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제안서 접수일이고요. 공고가 난 날로부터 딱 한 달, 매일매일 샛강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한 달 동안 100쪽짜리 제안서를 쓰기 위하여 매일 조금씩 썼습니다. 자꾸 들여다본다고 내용이 현격히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저와 동료들은 보고 또 보고, 쓰고 또 고치기를 거듭하여 문서를 만들었어요. 오늘 서류를 내고 다음 주 심사를 잘 마치면 앞으로 3년 동안 샛강을 위한 좋은 일, 멋진 일을 계속 펼칠 수 있게 됩니다. 제안서를 쓰는 일 때문에도 그렇지만 요즘 저는 매일같이 샛강에 나옵니다. 주말에는 그런대로 한적한 마음으로 산책도 할 수 있고요. 초봄 날씨답게 포근했던 지난 일요일에는 참 걷기 좋았습니다. 부지런히 연애중인 (것으로 보이는 ^^) 쌍쌍의 새들도 많이 보았어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이 걷고 있던지요. 샛숲길 흙길따라, 맑은 물길 따라, 느긋하게 걷는 사람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청둥오리를 구경하는 어르신들의 눈가에 따스함이 담기고, 따라나선 강아지들도 명랑해 보입니다. 한편 콩쥐팥쥐 자연놀이팡에서는 아이들이 밧줄다리를 건너고 곁을 지키고 선 아빠는 연신 카메라를 눌러댑니다. 일요일 산책을 하며 맑은 냇물처럼 은근한 기쁨이 마음 속에 퍼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