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눈이 내렸습니다.
아침나절 내내 펑펑 내리던 눈이 샛강숲을 고루 덮었습니다. 잠시 멈췄던 눈은 한낮에도 가만가만 조금씩 내리더군요. 샛강에서 바라보면 하얀 꽃잎들이 흩날리는 듯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눈이 내리는 날은 새들이 유난히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특히 직박구리들이 부숭부숭한 젖은 머리를 하고 나무 사이를죽여야 하는 돌아다니며 분주하죠.
저는 샛강에 사는 토끼들과 고양이들이 떠올랐습니다. 눈이 내리면 그들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그들은.
저도 샛강에서 4년차를 보내고 있습니다. 샛강숲은 상전벽해까지는 아니더라도, 2019년 초봄에 봤던 황량함에서 생기가 넘치는 숲과 강으로 탈바꿈했어요. 샛강에서의 첫해에는 나무와 꽃에 눈길이 갔습니다.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버드나무와 팽나무, 뽕나무와 참느릅나무들, 그리고 주로 봄에 많이 피어나는 애기똥풀이나 라일락, 조팝나무 꽃들을 보았어요.
첫해에는 생태교란종 마른 덩굴에서 나무들을 구해내는 일이 급했고, 그 해 가을에는 태풍 링링으로 쓰러진 백여 그루의 큰 버드나무들을 돌아보러 다녔어요. 그러다 차차 버드나무와 친한 박새들이 눈에 들어오고, 센터 근처에서 꾸준히 만나는 딱새가 귀엽게 여겨졌습니다. 그때는 버드나무에 매달린 박새를 보고 꽁트 같은 짧은 이야기를 짓곤 했어요. 작년부터는 샛강에 사는 동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수달과 너구리, 그리고 갈 곳이 없어 흘러온 토끼와 고양이들.
우리나라 최초의 생태공원. 그것이 이곳 샛강을 소개할 때 가장 먼저 수식어로 말해지곤 합니다. 생태공원은 무엇일까요? 생태계를 보호하는 곳이겠구나 대개 짐작을 하시겠지요. 생태공원에서는 자생종과 보호종 동식물들은 귀히 대접을 받습니다. 샛강에서는 그동안 발견된 보호종이 21종에 이르고 있어요. 작년 새로이 이사온 수달을 포함해서요.
생태교란종 혹은 외래종들은 몹시 미움을 받습니다. 생태교란종 가시박은 순식간에 숲을 장악해버리니 나무들을 구하는 저희들도 바쁘고, 시민들도 줄기차게 민원을 제기합니다. 단풍잎돼지풀, 환삼덩굴, 며느리밑씻개… 그런 풀들이 아주 많아요. 언제는 세어 보니 한 11가지가 샛강에 살더군요. 붉은귀거북이도 포획해야 하는 대상이 됩니다. 강이나 연못 한가운데 모습을 드러내는 그들을 포획하기 만만치 않아서 그들은 목숨을 부지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작년에는 토끼 두 마리가, 캣맘들이 돌보는 길고양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인간들의 집에 살다가 버림받는 동물들로 보입니다.
토끼 한 마리는 여의못 근처에, 다른 한 마리는 서울교 근처에 살았습니다.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이죠. 그런데 얼마 전에 이들 두 마리가 만났더군요. 검정 얼룩 토끼가 노랑 얼룩 토끼를 부지런히 따라다니는 걸 봤어요. 노랑 얼룩 토끼는 혼자 사는 게 더 익숙한지 검정 얼룩 토끼를 피하는 것 같았습니다.
고양이들은… 참 어렵고 난감합니다. 저희는 기왕 사는 애들은 도로 길가로 내쫓을 수는 없으니 중성화하고 제한적으로 살게 하면 좋겠다 하는 마음인데요. 캣맘들이 공원 안쪽으로 들어와 곳곳에 밥을 두고 갑니다. 공원 가장자리 지정한 곳에만 해달라는 요청에도 묵살하고 안쪽에 깊숙이 들어오곤 해요. 그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난 일요일에는 출근해서 샛강을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참, 요즘 샛강센터는 일요일에도 문을 열어요. 주중에 오기 어려운 분들은 주말에 놀러 오세요.) 멀리 성모병원 인근까지 가서 저희가 ‘잉어섬’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떼지어 놀고 있는 잉어들과 가물치들을 한참 구경하고 왔어요. 주변에 수달 똥이 있나 살폈는데 거기엔 없더군요.
돌아오는 길에 윤중로 쪽 사면에 나무와 덤불 사이에서 나란히 앉아 겨울 볕을 쬐고 있는 고양이 세 마리를 보았습니다. 셋 다 노랑 얼룩 고양이. 한 배에서 난 가족인 것 같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차게 되더군요.
나이가 들수록 목숨 가진 존재들이 다 애틋합니다. 그런데 자연이나 생태에는 우리가 가급적 개입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샛강숲에서도 원래 그 자리에서 살아가는 토박이들과 외부에서 온 ‘교란종’들이 어느 수준에서 공존할 수 있을까요. 샛강을 돌보고 자연을 지키는 입장에서 끝없이 고민되는 지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