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돌이와 갑순이 입춘 지나고 며칠, 이제야 드디어 샛강에도 봄이 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햇빛의 톤이 한결 부드럽게 다가오고 새들도 여유롭게 시간을 나고 있습니다. 샛강에 작년 여름께부터 두 마리의 토끼가 살고 있습니다. 전에 편지에서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요? 둘은 꽤 떨어진 곳에 살았죠. 그래서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보니 사이좋게 함께 있더군요! 둘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요? “생태공원에 토끼는 안 된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도 있습니다. 토끼도 그렇고 고양이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 토끼도 고양이도 함께 살아가고 있어요. 다들 누군가 버린 반려동물들입니다… 토끼를 쫓아낼 수도 없지만 살아가는 데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도 없는 형편이라 이래도 저래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추운 겨울 얼어 죽든 굶어 죽든 해도 어쩔 수 없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래도 눈이 몹시 많이 내리고 혹한의 찬바람이 매서운 밤이면 가끔 토끼 생각을 했습니다. 어디서 그 작은 몸을 쉬고 있을까 하는. 일요일 오후에 샛숲을 걷다가 갑돌이와 갑순이 (제가 지은 토끼들 이름입니다.)를 우연히 보았습니다. 둘은 서로 곁을 지키며 열심히 뭔가 오물오물 먹더군요. 작은 몸을 어찌나 바지런히 움직이던지요. 가까이 다가가도 경계하지 않아 한참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은 마른 풀을 주둥이로 걷어내고 땅에서 조금씩 올라오는 연한 초록 풀들을 먹었습니다. 갑순이는 앞발로 한결 부드러워진 흙을 파고 발라당 뒹굴며 놀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아 어디서 얼어 죽지는 않았을까 하던 차에 그토록 바지런히 지내는 모습을 보니 기뻤습니다. 저들은 겨울을 무사히 잘 났구나, 잘 살아냈구나… 겨울 동안 몇 분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가까운 이들의 어머님이나 아버님, 형님이 돌아가시기도 했고 근래에는 오랫동안 함께 환경운동을 해오신 분의 부고도 접했습니다. 추운 겨울을 더 춥게 하고, 코로나로 황폐해진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하는 소식이었습니다. 우리 곁에 조금은 더 계실 거라고 당연히 생각하던 분들을 잃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이 참 소중합니다. 이제 겨울에서 봄으로 향해가고 있습니다. 해가 우리와 머무는 시간이 나날이 길어집니다. 다들 더 건강해지시고, 더 행복해지시고 기분 좋은 봄을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벌써 샛강 매화는 꽃을 틔울 채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우리도 우리 안에 있는 씨앗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날들이길 기원합니다. 이런 희망이 담긴 시를 한 편 나눕니다. <따뜻한 흙> _ 조은 잠시 앉았다 온 곳에서 씨앗들이 묻어 왔다 씨앗들이 내 몸으로 흐르는 물길을 알았는지 떨어지지 않는다 씨앗들이 물이 순환하는 곳에서 풍기는 흙내를 맡으며 발아되는지 잉태의 기억도 생산의 기억도 없는 내 몸이 낯설다 언젠가 내게도 뿌리내리고 싶은 곳이 있었다 그 뿌리에서 꽃을 보려는 시절이 있었다 다시는 그 마음을 가질 수 없는 내 고통은 그곳에서 샘물처럼 올라온다 씨앗을 달고 그대로 살아보기로 한다 나무들 물오르는 샛강에서 2022.02.10 한강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