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 255_아침가리 물의 다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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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줄기가 거세게 땅바닥을 두드립니다. 포말을 일으키며 다시 대지로 튀어 오르고 나무를 흔드는군요. 폭우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짐승처럼 광포합니다.
아침부터 그칠 기미가 없는 요란한 폭우에 집을 나서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전화가 울렸습니다. 여고 동창 미현이었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데, 너네는 괜찮아?”
일 년에 두어 번 드문드문 만나는 오랜 친구 미현은 약국에서 일합니다. 일찍 출근한 그는 약국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며 어느 순간 창밖의 비를 망연히 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문득 강가에서 일하는 저를 떠올린 것 같아요. 전화까지 걸어 안부를 챙기는 다정한 마음에 힘을 얻고 집을 나섭니다. 순식간에 옷과 가방이 다 젖고 말지만 어서 샛강에 가서 상황을 살펴야겠기에 걸음을 서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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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김선영 팀장은 실시간으로 한강본부가 공유하는 상황을 알립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
[한강홍수통제소] 팔당댐 방류승인 : 07/18 11:20부터 6,000㎥/s 이내 (증가방류 +1000㎥/s)
[한강홍수통제소] 팔당댐 방류승인 : 07/18 11:36부터 7,500㎥/s 이내 (증가방류 +1500㎥/s)
[한강홍수통제소] 팔당댐 방류승인 : 07/18 17:10부터 10,000㎥/s 이내 (증가방류 1,500㎥/s)
전국 곳곳에 폭우가 내리고 있습니다. 특히 어제부터 수도권에는 집중호우가 내려 피해가 늘어나고 있네요. 우리 한강조합은 돌보고 살피는 동식물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큰비가 내리니 그만큼 우리 걱정도 늘어납니다. 어제 아침 일찍 최종인 선생님은 부지런히 중랑천 일대를 살펴보고 왔습니다. 봄에 만든 생동 생추어리 둠벙에서 때를 만난 맹꽁이들은 신나게 합창을 하고 참게들은 어슬렁 기어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성껏 만들어 수달이 이용하기 시작한 수달집은 수해를 입고 말았네요.
“수달집에 다녀갔을 수달에게 안전대피재난문자도 못 보냈는데”
요즘 한창 수달에 빠져 사는 곶자왈 님이 누구보다 걱정을 많이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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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곳곳에서 일하는 우리들은 우천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중랑천은 통행이 금지되었고, 샛강도 시시각각 물이 차오릅니다. 오후에 샛강 무장애나눔길은 이미 물에 잠겼는데 발 아래로 커다란 잉어들이 미끄덩거리는 감촉이 느껴졌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어린 시절 물이 넘치면 여기저기 보이던 물고기 떼가 떠올랐습니다.
어제는 진천 미호강을 다녀왔는데 여기도 새벽에 내린 비로 농다리를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관광객들로 북적대던 농다리는 인적이 드물고 강 건너 옅은 물안개에 쌓인 미르숲만 푸르렀습니다. 쓰러진 갈대밭 사이 백로와 왜가리들만 모여 서서 강물을 살피고 있네요. 잠시 짬을 내어 강 옆으로 난 오솔길을 걸었는데 습한 공기가 끈적거렸고 작은 뱀 한 마리가 슬그머니 제 앞을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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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중랑천에서 또 미호강에서 강에 사는 작은 주민들이 무탈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린 풀들과 나무들도 잘 버티기를, 수달과 족제비, 너구리와 삵도 잘 대피하기를, 새들도 새끼들을 잘 챙기기를 응원합니다. 마찬가지로 비 피해로 한숨과 눈물을 짓는 사람들이 적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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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가리에서 느낀 물의 다정함
“물이 별안간 찹니다. 예고 없던 차가움이 시원함으로 바뀌는 시간이 스스르 지나면서 드디어 들리는 아침가리 물소리. 미끄러운 바위와 돌들이 있지만, 서로서로 “조심조심”을 건네고, 디딜 곳을 찾아주고, 눈으로 손으로 살펴주며 그렇게 우리는 아침가리계곡 속에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물소리에 집중하면서 걷는 일이 황홀했습니다. 주위에 다른 소리를 압도하는, 앞지르는 그 소리에 하염없이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돌들이 물길을 바꾸고 돌리고 소리를 만들어 내는 모습이 눈부셨습니다.
(곶자왈 님의 ‘꼭 가리 아침가리’ 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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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덕언니,
아침가리 계곡은 나도 한 번도 간 적이 없어요. 그동안 몇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았죠. 한강조합이 창립하던 2018년 여름에도 몇몇 주요 창립 멤버들이 아침가리를 걸었어요. 그 곳에서 한강에 대한 꿈을 서로 나누었다고 해요. 이후 아침가리에 대한 글과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종종 들었어요.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은 어쩐지 다들 행복해보였죠. 그래서 꼭 언니랑 가고 싶었어요. 언니랑 같이 걸으며 언니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덩달아 푸근한 마음이 되고 싶었죠. 언니는 나의 언니지만, 늘 먼저 나를 챙기지만, 육지에 오면 내가 언니 같은 기분이 들어요. 제주를 떠나 서울에서 오래 산 내가 육지에서의 삶에 더 익숙하니까요.
트레킹을 시작하며 방동리에서 오르막길을 4km 정도 걸어야 했어요. 등에서 땀이 줄줄 났어요. 언니는 힘든지 자꾸 뒤쳐졌는데, 거기다 처음 보는 호두나무와 다래나무를 구경하느라 자꾸 멈춰 서더군요. 오르막길을 걷는 대신 택시로 어려운 구간을 지나는 사람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할 무렵 내리막길이 나오고 시원한 바람줄기가 땀을 식혀주더군요.
진동계곡에 들어서자 얼음처럼 물이 차가웠어요. 곶자왈 님이 쓴 것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찬물은 곧 시원함으로 바뀌었죠. 물길을 6km 정도 걸었을 거예요. 반나절 정도인데, 내 평생 그렇게 오랜 시간 물에 머물러 보기는 처음이었죠. 미끄러운 물 속 돌들 때문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온통 주의를 기울여야 했어요.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신중해야 했기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어요. 그저 물의 촉감과 질감, 여울 소리, 바람 소리, 그리고 때로 웃음 소리, 서로 부르는 소리, 조심하라고 건네는 소리만 들려왔어요.
오롯이 물과 함께 머물렀던 시간이었어요. 물은 다정했어요. 부드럽게 몸과 마음을 감싸주었죠. 그렇게 느낀 건 아마도 언니랑 같이 그 물을 건넜기에 그랬을 거예요. 서로 북돋아주고 손을 잡아주며 걷던 한강유람단 사람들도 마음에 오래 남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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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가리에서의 추억의 힘으로 우리 이 여름 잘 이겨내도록 해요.
고마운 마음을 담아
2024.07.18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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