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 264_중랑천 백일홍과 랑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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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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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264_중랑천 백일홍과 랑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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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 잘 보내셨나요?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어제도 폭염 경보가 있을 정도로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어요. 

 

언제부터인가 카톡이나 문자로 추석 인사를 하는 것이 보편화가 되었지요. 추석만이 아니라 연말 인사와 새해 인사, 그리고 설날 인사까지 다양한 이모티콘과 사진, 영상 이미지로 주고 받게 됩니다. 비슷비슷하거나 뻔한 말들을 주고받게 되고, 단체 카톡 같은 것엔 답을 어느 만큼 해야 하나 피로감도 생기죠. 그러면서도 다들 하니까 또 보내게도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소한 인사말에도 조심스럽습니다. 제가 하는 말이나 표현이 누군가에게 소외감이나 배제감을 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그런 것인데요. 제가 누리는 평온한 일상이나 가족의 화목, 친구들의 우정 같은 것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올해 한강의 추석 인사도 잠시 고민했어요. 그래서 가족분들 대신에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행복하고 건강한 한가위 보내세요라고 인사를 전했습니다. 꼭 가족이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좋아하는 사람 곁에서 명절을 보내면 좋겠다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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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는 가족들과 잘 보냈습니다. 오랜만에 아이와 같이 영화도 보고 다같이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었어요. 산책을 평소보다 더 오래 했고,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는 짧은 소설책도 찬찬히 음미하며 여러 번 읽었답니다. 마루와 랑랑 고양이들도 크게 싸우지 않고 제 주변을 맴돌았어요. 물론 여전히 서로 으르렁대긴 합니다만. 

 

#랑랑의 추석 

랑랑을 처음 만난 곳이 어디였냐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산책로 옆 수로 쪽에 온통 칡덩굴과 단풍잎돼지풀로 덮인 강가를 가리켰습니다. 저기, 저 안쪽에. 

 

겨울에 쓰레기를 치우고 새들의 쉼터를 만드느라 근처를 몇 날 며칠 다녔는데도, 랑랑이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덤불 아래쪽에 가져다 두었기 때문이죠. 어떤 모진 마음이 

 

랑랑이는 제가 집에 있으면 졸졸 따라다녀요. 안방과 거실과 화장실과 주방. 제가 가는 곳마다 조용히 따라와서 근처에 자리를 잡죠. 때로 눈이 마주치면 저를 해맑은 얼굴로 올려다봐요. 조금은 불편한 뒷다리로 부지런히 저를 따라다니는 걸 보면서, 종종 랑랑이의 중랑천에서의 시간을 생각해요. 그 때 느꼈을 허기와 추위, 무서움과 외로움을 생각하면 한없이 애틋한 마음이 생기죠. 

 

추석 연휴 마지막 날에 중랑천에 잠깐 들렀습니다. 연휴 내내 중랑천이 궁금했을 염키호테 대표님은 일찌감치 나와서 일을 하고 있더군요. 강가에 만들어 놓은 우중가든(우리는 중랑천을 가꿔요, 라는 우중가 선생님들이 만든 정원)과 강변가든에 며칠 사이에도 풀들이 많이 자랐다고, 그의 손길이 바빴습니다. 제가 가서 훼방 놓지 않았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하다 쓰러지지는 않을지 염려될 정도였어요. 그는 잠시 쉬며 음료수를 연거푸 마셨는데, 핸드폰을 보더니 폭염 경보 알림이 떴네…”하고 중얼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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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너무나 뜨거웠지만, 기왕 간 것이라 중랑천팀이 1번부터 9번까지 번호를 매겨서 관리하는 중랑천을 돌아봤습니다. 생동생동 생추어리에는 키가 크게 자란 해바라기들이 강 쪽으로 얼굴을 내밀어 씨앗을 여물게 하며 잎사귀를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에는 보지 못했던 나무들이 많이 보였어요. 

 

버드나무들이 그렇게 많았나 싶게 강가 쪽에 줄지어 서 있고, 봄부터 심은 나무들이 꽤 키가 자랐습니다. 이건 아까시 나무들. 가시박을 걷어주었더니 이렇게 자랐어요. 이건 가죽나무, 이건 영화배우가 심은 나무, 이건 자귀나무, 우리가 발견하고는 잘 키우려고 보호해둔 것이고, 이건 찔레들, 나중에 해바라기 씨앗을 다 털고 나면 그 자리에도 나무들을 심어야 할 테고 그는 나무 하나하나에 애정이 듬뿍 담긴 눈길을 주었습니다. 

 

곳곳에 잘 가꾼 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특히 백일홍이 지천이었죠. 강변에 있는 것들은 심은 것, 뒤꼍에 있는 것들 것 씨를 뿌린 것인데 아주 잘 자랐다고 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뒤꼍에서 몇 송이를 잘라 꽃다발을 만들어 건넸습니다. 집에 가지고 와서 랑랑이와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중랑천에서 온 아름다운 존재들 랑랑이는 꽃에 다가와 킁킁 냄새를 맡아봅니다. 중랑천의 추운 겨울이 아니라 봄과 여름의 시간을 간직한 백일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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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홍과 배롱나무 

백일홍 꽃 사진을 보고 은덕언니는 여러 색깔로 아름답게 피어 백일 동안 간다는 백일홍과 백일홍 백일홍 여러 번 소리내어 빠르게 발음하다 보면 배롱나무가 되었다는 배롱나무 백일홍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배롱나무의 꽃은 백일홍 꽃과 달리 하루도 못 넘긴다는 것을 언니를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백 일은 커녕 하루를 못 넘긴다.  벚꽃보다도 짧다. 아침에 고 다음 날 아침이면 사라진다. 우리가 보는 배롱나무 꽃은 하나가 진 자리에서 또 다른 봉오리가 피어나는 결과물이다. (중략)  배롱나무 꽃이 필 때면 한 번이라도 그 나무 아래에서 잠시 서성거려 볼 일이다. 하루의 생을 마친 붉은 잎들이 나무 아래 가득 깔려 있다. 피어나는 생과 사라지는 멸이 다 같이 한 순간으로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저기 아름답게 피어난 백일홍이 삶과 죽음에 대하여, 멈추고 바라보고 생각하게 합니다. 추석까지도 폭염이 기승을 부렸지만, 또 달이 바뀌고 시간이 흐르면 이 중랑천 강가에도 찬바람이 불겠지요. 이 강가에서 랑랑이처럼 겨울 찬바람에 버려진 존재가 더 이상 없기를, 이곳으로 찾아올 새들은 다들 안전하고 배부르게 겨울을 날 수 있기를 벌써부터 바라고 있습니다.  

 

이제 연휴도 끝났으니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네요. 갖가지 축제들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샛강에서는 강교육 축제가 다음 주말에 있고, 중랑천에서는 철새 축제를 다채롭게 준비하고 있어요. 

 

더없이 아름다운 가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백일홍처럼 화사하게! 

 

2024.09.19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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