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비가 내린다.
비는 숲을 고루 적신다. 비는 선버들 가는 가지 위로 떨어져 줄기를 따라 뿌리로 스며든다. 비는 말랐던 땅과 풀섶 위를 적시며 꾸준히 물골로 모여 흐른다. 새벽부터, 아직 어둠에 잠긴 숲에 내리던 비는 종일 쉼없이 내릴 기세이다.
비가 내리는 숲 속에서 동물들은 숨을 죽인다. 새들은 어디론가 날아가버리고, 간혹 뛰어다니고 부스럭거리던 생명들이 그저 숨을 죽이고 숲 어디선가 더운 숨을 고요히 내쉬고 있을 것이다. 비가 내리는 숲은 고립된 섬처럼 외롭기조차 하다.
너는 이 비를 보고 있는지? 이렇게 비를 맞는 고독한 숲을 오랜 시간 봐온 너는 지금 어디에서 이 비를 보고 있는지?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들판을 건너가던 너는, 너의 시선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나는 비를 바라보며 너를 생각한다.
#2년
너를 만나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너의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되었고, 너의 냄새는 마른 허공에 떠돌았다. 숨이 끊긴 고라니가 갈대밭 아래서 발견되기도 하고, 새가 날개를 접은 채로 뻘 위에서 희미한 음영을 만들기도 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열 마리 남짓한 너구리들만 어리둥절한 얼굴로 다녀갔고, 너는 근처를 배회하다 사라지곤 했지. 이제 우리는 만났다. 너는 네가 자유롭게 살던 그 숲과 습지를 이제 떠나야만 한다. 애초에 선버들 우거진 그 곳은, 고라니가 겅중겅중 뛰며 노을 진 저녁 풍경을 만드는 그 곳은 네가 살 곳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유기견의 딜레마
작년에 이어 얼마 전에 장항습지에서 다시 한 마리의 유기견이 포획되었습니다. 야생화된 유기견들은 생태계의 오랜 골치였죠. 습지와 숲은 애초에 그들의 집이 아니니까요. 그들은 들개가 되어 그곳 짐승들을 많이 물어 죽였습니다.
이제 장항습지의 여린 생명들을 위해 별 수 없이 그 곳을 떠나야만 하는 이 개의 운명, 쓸쓸하고 애잔합니다. 이 개를 함부로 버린 손길을 원망합니다. 생명 있는 것들을 쉬이 내칠 생각을 어떻게 할까요. 부디 다른 곳에서 목숨 부지하며 순탄히 살아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다시, 봄비
봄의 첫 날, 비가 내리네요. 봄에 내리는 비니까 봄비. 이 단어는 그 자체로 설렘과 희망을 안겨주는 것만 같습니다.
오늘 봄비는 종일 내립니다. 샛강이 궁금해서 나가보았습니다. 우산을 받쳐 들고 질척이지 않는 곳을 디뎌 서서 숲을 보았습니다. 버드나무 위로 초록 기운이 선명합니다. 작은 물방울들이 구슬처럼 여린 가지에 매달려 작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반짝이는 풍경이고, 애수를 자아냅니다.
한편 비가 내리니 도심 하수관에 쌓인 먼지와 더러 오염된 것들이 강으로 흘러 들어옵니다. 빗물이 묵는 먼지들을 쓸어 내며 샛강으로 섞여 듭니다. 최근 샛강으로 들어오는 하수관거에서 수달이 쉬던 흔적을 발견했고, 그들이 좀더 잘 쉴 수 있게 서식처를 만들어 두었는데 이 비가 그것들을 마저 쓸어가 버립니다.
땅을 두들기며, 나무 줄기를 때리며 생명을 일깨우는 이 봄비가, 한편으로 수달 서식처를 잠기게 하니 수달을 기다리는 우리에겐 좀 어렵게 되었습니다. 장항습지에서 2년 동안 기다린 유기견을 포획해서 그곳 뭇 생명들을 위해 안도하면서도, 그 개의 미래를 위해서는 걱정하는 마음도 떨치지 못합니다. 이렇게 자연도 우리의 삶도 양가적인 것임을, 봄비 내리는 샛강에서 다시 생각해봅니다.
#샛숲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것들
지난 일주일 내내 샛숲학교에 온 어린이 손님들은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샛강에 사는 새들을 위해 ‘버드 케이크’를 만들어 달아주고, 새들이 찾아와서 먹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았기 때문이지요.
이제 봄이 되어 샛숲학교 3월 프로그램은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꾸는 버드나무 교실도 여전히 좋고, 봄꽃 나들이 프로그램도 신설했습니다. 기후실천을 하며 샛강 투어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3월 중순부터 여러 차례 진행됩니다. 샛숲학교 프로그램 살펴보시고, 꽃과 새, 시와 산책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시간에 동참해보세요.
샛숲학교 말씀을 드리니, 이제 새로이 학교에 가는 많은 학생들이 생각나네요. 어디서든, 어떤 식으로든, 학교에서 일터에서 혹은 삶의 새로운 기로에서 새 출발을 하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행복하고 설레는 봄을 기원하며.
2021.03.01
봄비 내리는 새봄 첫날에
한강조합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