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미나리
“미나리~ 미나리~ 원더풀~ 원더풀~”
어제 ‘미나리’를 보았습니다.
요즘 극장가 영화 순위 1위가 ‘미나리’임을 아시는지요? 외국에서 여러 굵직굵직한 상을 받아서 그럴까요. 관객들의 관심이 높은 모양입니다. 저 역시도 극찬을 받은 배우 윤여정의 연기가 궁금하여 서둘러 보았습니다.
영화 제목 미나리가 뭔가 중의적인 의미가 있나 궁금했는데, 미나리는 그야말로 미나리였습니다. 허름한 곳, 낮은 곳, 시골 논두렁이나 하천의 구석, 어디 물 웅덩이가 있는 보잘 것 없는 곳에서 자라는 그 미나리입니다. 생명력이 질겨 일단 물가에 뿌리를 내리면 왕성하게 잘 자라지요.
영화 ‘미나리’는 미국에, 그것도 대도시가 아닌 아칸소라는 미국 남부의 시골에서 뿌리를 내려 살아가려는 어느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심장이 약한 어린 아들과 초등학생쯤 된 딸아이를 데리고 젊은 부부가 캘리포니아를 떠나 새로운 꿈과 희망을 안고 아칸소에서 삶을 일궈 보려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게 낯설고 어렵고 아무리 애를 써도 돈도 모이지 않습니다. 이 부부는 심기일전해서 살아보려고 한국에 있는 아이들의 외할머니(윤여정 분)를 미국으로 부르지요.
외할머니가 한국에서 고춧가루와 같은 이민자들이 그리워할 먹거리와 더불어 챙겨온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미나리. 할머니는 집 인근에서 물가를 찾았고, 그 곳에 미나리 씨앗을 뿌립니다. 데쳐 먹어도 좋고, 찌개에도 먹기 좋고, 일단 뿌리만 내리면 잘 자라 기특하고 고마운 미나리, 할머니는 손자와 함께 ‘미나리 미나리, 원더풀 원더풀’ 노래를 부릅니다.
이 이민자 가족은 여러 애환을 겪지만, 그들을 그 땅에서 낙오하지 않게 붙들어 주는 것은 미나리입니다. 별 것 아닌 사소한 이 풀이, 그들에게는 희망의 징표와 다르지 않아요. 감독은 자신의 어린 시절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물가에서 무심하게 자라나는 미나리. 가난한 우리 이웃들의 고마운 먹거리가 되어 주기도 하는 이 미나리가 어떤 이들에게는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희망이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자연의 것들이 종종 우리에게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일본의 유명한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에게는 ‘나의 나무’가 있고 그는 삶의 많은 순간에 ‘나의 나무’를 생각합니다. 노년에 나의 나무에게 가서 내가 어떻게 살아왔다고 말할 것인가… 그 생각을 언제나 마음에 지니며 그는 정직하고 아름다운 지성의 삶을 살아가지요.
여러분의 ‘미나리’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에게도 ‘나의 나무’가 있는지요?
#당신의 쓰레기
지난 금요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반가운 손님이 샛강에 놀러 오셔서 모처럼 불금답게 인근 식당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겨울내내 잔뜩 얼어 있던 마음이 눈 녹듯이 풀리며 편안한 주말을 앞둔 저녁이었습니다.
영화와 연극, 강과 생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까지는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맥주 맛도 좋았고요. ^^) 그러다 쓰레기로 화제가 옮겨지면서 달라졌습니다. 저와 Y는 정색을 하고 쓰레기 문제로 언성을 높이게 되었습니다. 샛강에는 곳곳에 쓰레기가 넘치고 Y는 공원을 돌아볼 때마다 눈살을 찌푸립니다. 이 날도 Y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Y의 주장은 23만평 샛강생태공원의 쓰레기를 우리가 다 치워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우리 한강조합이 그 쓰레기를 어떻게 다 치우냐, 하는 만큼 노력하고 있다고 항변을 했고요.
네, 쓰레기는 끝이 없습니다. 강물에 따라 떠내려오는 쓰레기도 많지만, 사람들이 산책 중에 버린 개똥을 닦은 물휴지, 일회용품, 음료수 병 등도 수없이 있습니다. 이보다 더 심한 것은 도로변 갓길에 차를 주차하고 집에 있는 쓰레기를 들고 나와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묻습니다. 자동차를 탈 여력이 있는 당신, 쓰레기 봉투 살 돈이 아까워서 그런 건가요? 왜 버드나무 아래 박새들이 사는 거기에, 곧 두꺼비도 산란하러 나올 물가에, 갈대 틈새에, 당신의 쓰레기를 들고 와서 던지나요?
당신에게 또 묻습니다. 개똥을 닦고 난 물휴지는 보기에도 역겨워요. (저는 나이가 들어가는지 점점 비위도 약해져요.) 당신의 소중한 반려견을 사랑하듯이, 반려견의 배설물도 잘 처리해줘야 하지 않나요? 당신이 버린 더러운 물휴지를 누군가 치우지 않으면, 다음 날 당신 산책길에 결국 당신이 마주칠 쓰레기인데요?
애인과 같이 며칠 전 놀러 왔던 당신에게 묻습니다. 여의도역 상가에서 사서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시원하고 상큼했나요? 애인의 손을 잡고 즐긴 공원 산책은 좋았지요? 그렇다면 그 플라스틱 쓰레기를 가지고 갔어야 하죠. 당신이 다음에 올 때에 누군가 담배 꽁초까지 이겨 넣은 그 컵이 거기 그 자리에 오도카니 있으면 기분이 어떨까요?
당신을 원망하고 싶어집니다. 새 봄 첫 주에 맞았던 불금 저녁, 반가운 손님 (한겨레 신문 김규원 기자님이었습니다.)과 함께 보내던 시간, 당신 때문입니다. Y와 내가 쓰레기 때문에 설전을 벌이게 된 것은.
#쓰레기 줍기도 기후 실천
샛숲학교에서는 지난 주부터 ‘기후 실천 줍깅’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는 이들이 많아 벌써 3월은 마감입니다. 그만큼 또 우리 주위에는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고 애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오늘도 쓰레기를 줍기 위하여 샛강센터에 드나드는 자원봉사자 분들을 보며 행복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도와주시니 Y와 제가 언쟁을 벌일 일도 이제 없겠습니다. ^^
이번 달에는 매우 특별한 샛강 기후실천 투어도 여러 차례 준비되어 있습니다. 웹자보 보시고 가능한 일정에 참여하셔도 좋겠습니다.
낮은 대체로 포근하지만 일교차가 큰 요즘입니다.
건강 관리 잘 하시고, 기분 좋은 봄날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2021.03.08
버드나무 연두 빛 또렷해지는 샛강에서
한강조합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