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식 영감
“나 이제 나가.”
대답이 없이 아내 순자씨는 끄응 소리를 내며 돌아 누웠다.
“아 그러지 말고 조반이라도 좀 들어!”
괜히 빼액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순자씨는 묵묵부답. 문을 닫고 나오는데 뒤에서 밭은 기침 소리가 들렸다. 순자씨는 사흘 전부터 기침이 많이 나서 식당 홀 서빙 일을 쉬고 있다. 코로나로 다들 난리인데 식당에서 기침이 나서는 일을 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김만식 영감은 집 골목을 나와 건널목을 건넜다. 몸에 닿는 봄 바람이 사뭇 부드럽게 살랑대지만 심사가 사나웠다. 코로나로 그가 하던 공공근로 일도 뚝 끊겼는데, 아내마저 식당일을 며칠 쉬게 되니 먹고 사는 일도 걱정이었다. 사나흘만 쉬고 나서 나아지면 다행이지만, 순자씨의 기침은 도통 가라앉을 기세가 없었다.
영감은 샛강 다리를 건너 공원으로 접어 들었다. 샛강에서 논병아리 서너 마리가 잠수를 하며 노는데 전에 같으면 한참 바라볼 것을 그냥 시큰둥하게 지나친다. 조팝나무 길을 따라 뽕나무 숲으로 접어들었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부인이 옆을 지나는데 개똥을 닦고 나서 물휴지를 툭 던지고 간다. 김영감의 발치에 떨어졌다. 아니, 저 여편네가…
평소 같으면 뒤쫓아가서 일장 훈계 연설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아침은 어쩐지 풀이 죽고 짜증만 솟았다. 너른 산책로로 나오니 어디서 달큼한 향이 코를 찌른다. 고개를 드니 매화 나무들이 줄지어 서서 꽃을 화사하게 피웠다. 노부부가 그 앞에서 서로를 스마트폰으로 번갈아 찍어주고 있었다. 김만식 영감은 빠른 걸음으로 그 곳을 지나쳤다.
심란한 마음을 안고 걷다 보니 어느새 여의교. 잠시 벤치에 앉아 쉬었다. 마스크를 단단히 쓴 노인네들이 열심히 허리 돌리고, 바퀴 돌리고… 운동을 해댄다. 어찌 다들 저리 놀면서 사는가. 김영감은 참느릅나무 군락이 우거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때 보았다. 쓰레기 마대와 집게를 들고 어슬렁 걸어가는 젊은이 하나를.
젊은이가 든 마대는 가벼워 보였다. 그는 버려진 캔 하나를 주워 올리더니 심드렁하게 마대에 집어넣었다. 주변을 좀 두리번거리더니 마대를 내리고 기지개를 켠다. 마스크를 썼으나 하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젊은이는 김영감이 앉은 벤치 맞은편으로 걸어왔다. 이어서 핸드폰을 꺼내어 고개를 처박았다. 김영감은 이제 안 보는 척하면서 힐끔힐끔 젊은이만 바라보았다. ‘저것이 분명 돈을 받고 하는 일일 터인데, 저렇게 놀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 뭉기적거리던 젊은이가 다시 좁은 산책로로 들어섰다.
정의 사회 구현. 김영감의 머리 속에 갑자기 떠오른 단어가 이것이었다. 아무리 젊은 것이라도 해도 세상을 저리 호락호락 살면 안 되지. 일하는 흉내만 내며 돈을 벌어? 그는 이제 숫제 미행하듯이 젊은이를 따라 나섰다. 물론 일정 거리를 두고 나무 사이사이로 몸을 숨기면서 말이다.
한 시간이나 흘렀을까. 드디어 젊은이가 샛강센터로 향했다. 일감을 거기서 받고 온 모양이다. 그가 떠나자 마자 김영감은 샛강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여의샛강생태공원입니다.”
친절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다. 김영감은 에헴 기침을 한번 했다.
“여기 아침에 쓰레기 줍는 젊은이를 보았소.”
“아 네. 줍깅 봉사자 말씀이시군요?”
“뭐 줍깅인지 조깅인지 나는 모르겠고. 내가 근 한 시간은 따라 다녔어.”
김영감은 상대가 보아하니 아들뻘 같아 쉽게 반말이 나왔고 단단히 일러주기로 마음먹었다.
“근데 말이야. 내내 놀더라구. 내가 그 친구 일을 하나 안 하나, 뒤에서 졸졸 따라가 보았지. 그런데 핸드폰 만지작거리며 노는 시간 반, 하품하며 쉬는 시간 반. 그게 다야. 이거 당장 조치를 취해. 알았소?”
“아 네. 저희가 알아보고 잘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중한 대꾸에 덧붙일 말이 없었다. 그래도 그냥 끊기엔 멋쩍어서 단도리 했다.
“내가 샛강을 매일 나와 둘러보는 사람이니 똑바로 하라고 전해요.”
#샛숲학교 기후실천 줍깅 & 기후투어
요즘 샛강에는 줍깅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많습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대체로 정말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쉬엄쉬엄 하던 한 청년이 지나가던 어르신에게 딱 걸렸습니다. 그 어르신은 청년이 제대로 하는지 따라가며 살폈다고 하시더군요.
(위의 김만식 영감 이야기는 그 상황에 약간의 상상을 보태어 쓴 이야기입니다. ^^)
샛숲학교에서는 기후투어가 이어지고 있고 이제 곧 노자생태교실도 시작됩니다.
누구나 누리는 샛강에서 행복한 시간을 길어가시길 바라며.
2021.03.18
미선나무 꽃 피고 명자나무 봉긋한 샛강에서
한강조합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