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선생님들께,
창밖으로 스며드는 찬 기운에 뒤척이다 새벽에 잠이 깼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은 듯 겨울 밤은 고요합니다. 나흘 내내 이어지는 영하의 한파와 네 자리 수를 찍는 일일 코로나 확진자 수로 몸도 마음도 얼음장 같은 날들입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두서없는 상념 사이에서 이 말이 또렷이 떠올랐습니다. 이 말은 일전에 읽었던 황정은 작가의 소설 제목입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무엇을? 그리고 대체 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다가 아예 일어나 앉아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따뜻한 커피도 한 잔 내렸습니다.
#계속해보고 있습니다. 정은과 염키호테의 경우
어제 저녁은 영하 15도 내외의 날씨였습니다. 강가에서는 강바람이 더해 추위가 더욱 매섭습니다. 그 혹한 속에서 강물에 까만 그림자가 일렁이는 밤중까지 강가를 헤매고 다닌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달의 흔적을 찾고 먹이를 제공하기 위해 모인 이들. 수달의 달인 박원수 선생님, 중랑천환경센터 김향희 국장님, 고덕천시민모임 문영란 대표님, 한강의 수달 언니 정은, 그리고 염키호테님입니다.
세 마리의 물고기를 한 손에 든 염키호테님은 추위로 목은 움츠렸지만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습니다. 한강에 사는 배고픈 수달에게 던져줄 먹이를 든 모습입니다.
‘수달이 돌아오는 마을 생태지도 만들기’ 프로젝트는 지난 달에 끝났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이제야말로 뭔가 본격 시작인 모양입니다. 사업은 끝났는데 정은대리는 한강 곳곳에 설치한 수달 카메라를 확인하러 돌아다니고, 똥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염대표님도 수달을 샛강에 모실 방법을 고민하여 강바람을 맞고 있고요.
활동을 할 돈이 있냐 없냐, 지금 코로나 시국에 사람들이 살아내는 것도 바쁜데 오지랖 넓게 수달 챙기나 하는 생각은 끼어들 틈도 없습니다. 그저 한강의 생태계가 건강했으면 좋겠고, 수달들이 잘 살면 인간들도 흐뭇하고 기쁘지 않을까 하는 생각뿐입니다.
그래서, 계속해보고 있습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길을 만드는 사람들
계속 걸었습니다. 걷고 또 걸었습니다. 걷다가 멈추고 쓰러진 나무를 정리하기도 하고, 누군가 버린 쓰레기를 줍기도 했습니다. 찔레 관목 속에서 잽싸게 날아다니는 붉은머리오목눈이들을 보며 미소지었고, 물가 버드나무에 몰려 앉았다가 한 마리씩 물에 뛰어들어 장난을 치는 직박구리들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샛강길 주산책로 이외에도 이제 숲의 안쪽으로 제법 길이 이어졌습니다. 안쪽의 길은 ‘샛숲길’로 부르고 본격 코스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시민들이 혼자 걸으면서도 숲과 나무, 새와 곤충에 친해질 수 있게 생태 정보를 담은 안내판도 설치할 생각이고요.
호젓한 숲 속 코스로 자연스레 연결하려다 보니 야트막한 강물에 길이 끊기는 곳이 두 군데 있었습니다. 토목 공사도 망설이지 않는 한강 샛숲팀! 작년에 쓰러진 버드나무를 활용해 튼튼한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유권무 팀장님과 영등포구 선생님들의 수고와 땀 외에는 아무런 돈이 들지 않은 공사였지요.
샛강 센터 앞쪽 무릉도원으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는 ‘무릉교’로, ‘소로의 길’을 지나 월든 호수로 향하는 아늑한 물가에 놓은 다리는 나중에 수달들이 와서 살라고 ‘수달교’로 이름지었습니다.
바깥 사회는 거리두기와 일시 멈춤으로 한적하고 쓸쓸한 사이, 샛숲에서 한강 사람들은 부지런히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어제 드디어 3.5km의 코스가 연결되었습니다. 이제 파랑 초록 리본으로 표식을 하고 코스 안내판을 세우면 거의 완성됩니다.
길을 만들고 사람들을 강숲으로 초대하는 일, 저희는 계속해보겠습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한강길 트레킹 사진전
지난 주 금요일 (12.11) ‘한강길을 걷는 사람들 Trekking 사진전’을 서울 NPO지원센터에서 열었습니다. 올 한 해 네 번에 걸친 강길 트레킹에서 박현진 사진작가의 수업을 들으며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전시한 것입니다.
총 50점의 사진이 걸렸습니다. 트레킹 참가자들은 자신이 핸드폰으로 쉽게 찍은 사진들이 작품이 되어 걸린 모습에 감탄하고 뿌듯해 했습니다. 이날만큼은 서로에게 ‘작가님’ 호칭을 부르며 유쾌하게 웃고 덕담을 나누었습니다. 오프닝 행사는 소규모 대면 그리고 온라인 중계로 진행되었어요. 코로나로 인하여 멋진 사진전에 많은 분들을 직접 모실 수 없어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러나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멈추는 한강은 아닙니다. ^^ 시민들이 기록한 멋진 한강길의 모습을 많은 시민들이 보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당분간은 실내에서 뭔가 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니 새로운 상상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샛숲 갤러리!
아예 사진들을 숲 속에 걸어볼 계획입니다. 참느릅나무와 버드나무, 뽕나무와 팽나무에게 갤러리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려 합니다. 그렇다면 새로 만들어진 샛숲길을 걷는 사람들이 멈춰 서서 나무에 걸린 사진들을 보게 됩니다.
사진 속에는 여름 날의 비수구미 계곡이, 검단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유유한 강이, 물이 불어난 한탄강 옆 기암절벽이, 억새가 춤을 추고 큰기러기 줄지어 날아가는 장항습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숲 속에서 지나간 계절과 공간들을 추억하고 행복에 잠기기를 바랍니다. 이제 어느덧 연말이니까요.
크리스마스의 들뜬 파티도 없이, 늦도록 이어지는 송년 술자리도 없이, 그저 조용히 해를 넘겨야겠습니다. 그러나 한 해를 돌아보며 고마운 이들을 떠올리고, 아쉽던 기억도 더듬어 보는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무엇보다 유례없이 힘들었던 올 한 해 잘 버텨준 우리 스스로에게 고맙다고 격려의 말을 건네 보시면 어떨까요.
끝없이 서로를 배려하고, 가족과 친구들의 안위를 염려하며 올 한 해 지내오신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고, 샛숲길에서 뵐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모두 잠들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의 기척을 듣습니다. 오래지 않아 날이 밝을 것입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창비 P228)
2020.12.17
샛숲길에 멈춰 서서
한강조합 사무국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