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 박새구먼유
안녕하신지라.
코로나 땜시 올해 내내 징허게 고생하셨는데 안녕허시냐고 인사드리기가 거시기 하구만유. 그래도 평안하신지, 밥은 먹고 댕기시는지 궁금하구만유.
인사가 늦었네유. 지는 샛강에 사는 박새구먼유. 작년 초부터 살기 시작했는데, 벌써 두 해가 넘어가네유. 작년에는 성모병원 앞 쪽 숲에 살다가 지금은 샛강 센터 앞 무릉도원 근처로 이사왔어유. 왜냐고요? 아 그거야 여기가 훨씬 살기 좋다는 소문듣고 왔지라.
2년 사이 샛강의 변화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유식헌 말로 상전벽해다, 네, 그게 딱 맞는 표현이네요. 그러니까 뽕나무 밭이 바다로 변할 정도로 큰 변화다 그 말인데, 샛강에 뽕나무들은 잘 있어유. 하물며 백 년 뽕나무도 있는데, 이 나무들이 홍수가 난들 끄떡이나 하겠어유? 해마다 쑥쑥 잘 자라고 잘 살지유.
작년 봄에 한강조합 사람들이 와서 이것저것 하대유. 나무도 심고, 지긋지긋한 가시박도 뽑고, 쓰러진 나무도 정비하고… 샛강 숲은 저희 같은 작은 새들이 살기 좋게 나날이 변하더라고요.
저희야 신났지라. 쇠박새, 진박새, 그리고 황새 따라다니기를 포기한 뱁새들까지… 저희 가까이 모여서 살고 신나고 잘 놀아유. 겨울이 되어 먹거리가 걱정이었는데 (사람들만 겨울철 먹거리 걱정하는 게 아니여유.), 한강조합 덕분에 살았시유.
빠르기가 뱁새만큼이나 빠른 한강 정은 누님이 매일같이 먹이통을 채워줘서 그래유. 땅콩을 그득그득 담아줘서 배불리 먹어유. 그렇다고 저더러 ‘코로나 확찐자’ 아니냐 뭐 그런 소리덜랑 하지 말아유. 먹을 수 있을 때 양껏 먹어라. 할머니들이 맨날 그러지 않어유 ?
이제 이곳 생땅콩 맛집은 근동에 있는 새들에게 소문이 상당히 퍼졌나봐유. 아침에 와보면 그새 먹이통 바닥이 보일 때도 있어유. 그래서 급한대로 가까운 영등포시장에 가서 땅콩을 사다 채워넣긴 하는데 빠른 속도로 비는 먹이통에 정은 누님은 걱정이 많은가봐유. 이런저런 궁리 끝에 샛강에서 나온 폐목으로 냄비받침을 만들어 팔고 먹이를 더 살 생각이래유. 저희야 이래저래 고맙기만 하지유.
#샛강산책길 개장 소식을 접한 영등포구 주민 김용태씨 (60대 초반 남성)
코로나 터지기 전에는 수영과 등산을 꾸준히 했어요. 제 나이쯤 되면 건강관리가 가장 중요하거든요. 주변에도 보면 사업이다 뭐다 하며 과로하다가 픽픽 쓰러지는 친구들도 제법 있더라고요.
저는 평생 학교 선생을 했어요. 은퇴하고 연금이 꼬박꼬박 나오니 그거면 됬지요 뭐. 건강 잘 챙기며 자식들 부담 안 주고 살려고요. 그런데 올해 초부터 난데없이 생전 겪어보지 못했던 코로나 사태가 터지니 갑갑하기 그지 없었죠. 수영장도 문을 닫고, 등산도 마음대로 못해요. 글쎄 줄지어 올라가야 할 정도로, 산에는 인산인해더라니까요.
샛강생태공원이 있어야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제가 여기 광장아파트에서 40년 가까이 살았으니 샛강은 잘 알죠. 그러나 이전에는 여기 걸을 생각을 안 했어요. 어수선하고 관리도 안 된 것 같고, 쓰레기에 소음, 더러 악취까지 나니 걷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작년부터 뭔가 달라지는 조짐이 보이더라고요. 종종 지나다 보면 어린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이 나무를 심거나, 풀을 관리하는 모습도 보이고요.
올해는 할 수 없이, 마땅히 갈 데가 없어 여기를 걸었어요. 흙길 코스가 편하고 좋대요. 또 풀과 나무 관리가 꾸준히 되면서 안쪽으로도 샛길이 많이 생겼더군요. 다들 코로나로 갈 데가 없어 그런지 주 산책로는 맨날 바글바글한 편인데, 안쪽 샛길은 참 편안하고 조용해요. 뱁새나 박새들도 아주 많이 보이고요. 제가 고향이 순천인데, 늦가을 일렁이는 갈대밭을 보면서는 고향 생각도 났어요. 이제 여기가 내 고향이나 다름없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겨울 들어 다들 코로나로 움츠려 있는데 여기 샛강에는 오히려 일하는 분들이 많이 보이대요. 하도 열심히 임목 정리도 하고 뭔가 뚝딱뚝딱 만들고 있길래 가서 물었어요. 어디서 나오신 분들이냐고. 샛강을 관리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직원들이라네요. (왜 서울시 공무원들이 하지 않고 사회적협동조합이라는 데서 하는지 잘 이해는 되지 않았어요.)
뭔 일들을 그리 밤낮없이 열심히 하는지, 제가 걷는 산책로와 샛길 임목이 싹 정리가 되었더군요. 이번 주에는 보니까 아예 샛길을 이어 샛강산책로’ 코스를 만들고 개장을 한다고 해요. 작은 지류를 건너기 위한 다리도 두 개 만들었던데, 돈 한 푼 쓰지 않고 오직 직원들의 힘으로 했답니다. 나무와 흙 등 샛강에 버려져 있는 것들을 활용하여 장정 대여섯이 동시에 건너도 꿈쩍없을 다리를 만들었더군요. 참 대단들 합니다.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에 맞춰 임시 개장을 한다니 개장 시간이 맞춰 걸으러 나올 생각입니다. 개장식 하면 떡이라도 돌리려나 생각했는데 어림없겠어요. 코로나로 개장 행사도 거창하게 할 수가 없잖아요. 모여 봐야 네 명이겠네요. 지나다가 한강 직원이 보이면 축하 성금이라도 좀 내줘야겠습니다. 시민들을 위해 그렇게 애를 쓰는데 좀 성의를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지요.
#정은의 메리 샛강 크리스마스
안녕하세요. 한강조합의 정은대리입니다. 선생님들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죠?
저는 요즘 매일같이 아침 일찍 샛강에 나오고 있어요. 샛강 여러 곳에 새 먹이통과 관찰 카메라를 설치했거든요. 먹이통이 비는 족족 채워주기도 하고요, 까치들이 독차지해서 작은 새들이 먹기 힘들지는 않는지 살피기도 해요. 땅콩만 먹으면 물릴까봐 솔방울에 꿀을 발라 고소한 견과를 붙여놓기도 했어요. 볍씨도 섞어보았고요.
애들이 잘 먹는 걸 보면 귀엽고 좋긴 한데, 먹이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걱정입니다. 땅콩도 중국산으로 사긴 해도 꾸준히 대려면 값이 만만치 않거든요. 이 아이들, 먹거리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요즘 샛강에 오면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아요. 하늘을 나는 말똥가리, 샛강에서 잠수하는 물닭과 논병아리, 흰죽지와 가마우지, 나무에 우아하게 앉은 굴뚝새와 청딱따구리… 박새와 뱁새, 딱새와 직박구리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고요.
저는 요즘 샛강에 수달이 살면 어떨까 싶어 한강 여기저기 조사 다니고 있어요. 어쩌면 내년엔 샛강에서 수달을 돌봐주고 있는 저를 보실 수 있으실 거예요. 그나저나 먹이 확보가 살짝 걱정이긴 합니다. 새들 먹이통 채워주기도 바쁜데, 수달은 또 얼마나 많이 먹을까요. 선생님들 좀 도와주실 거지요?
고맙습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그리고 복된 새해 맞이하세요.
메리 샛강 크리스마스!!!
2020.12.24
크리스마스 이브에
한강조합 사무국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