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의 편지
얘들아, 어디 있니?
추운데 힘들지? 밥은 먹었어?
나는 요즘 혼잣말을 자주 하곤 해. 한강을 따라다니며 너희 흔적을 볼 때마다, 너희 똥과 너희 발자국, 너희 냄새를 느낄 때마다 말을 하지. 괜찮아? 잘 살고 있는 거야?
올 겨울 들어 강에 나가지 않은 날이 거의 없었어. 주중에도, 주말에도 갔어. 너희들이 거기 있을 거니까.
혼자 갈 때도 많지만, 같이 가주시는 분들이 있어 든든해. 중랑청환경센터 김향희 국장님, 고덕천을 지키는 사람들 문영란 대표님도 같이 다니시곤 해. 청계천으로, 중랑천으로, 또 고덕천으로 너희를 찾으러 다니지. 자원봉사자들도, 우리 염키호테 대표님도 물론 종종 따라오시고.
한강 지류만 다닌 것은 아니었어. 원래 작년부터 팔당부터 강서까지 한강 수계를 따라 카메라를 10대 남짓 설치했지. 너희가 살 것 같은 강가에 바싹 가까이 설치하고 기다렸어. 작년 봄부터 가을까지, 강줄기를 따라 카메라를 확인하러 다니는 게 내 일이었어.
여름에 한강에 홍수가 났을 때는 난리였지. 카메라가 물살에 떠내려 갔을까봐 물이 어느 정도 빠지니 달려 가서 확인해보았어. 정말 하나는 홍수에 떠내려 가고, 하나는 뜬금없이 경찰서에 가 있더라. 지나가던 시민이 몰래 카메라가 있다고 제보했다나? 에효. 너희들 사는 모습 찍겠다고 설치한 관찰 카메라가 몰카로 오인받다니, 얼마나 몰카가 문제면 그렇겠냐만 좀 씁쓸하더라. 암튼 경찰서에 가서 설명드리고 찾아왔어.
가을에 박원수 선생님을 비롯해서 너희들을 정말 좋아하는 분들을 여럿 만난 것이 나의 행운이었어. 그 때가 시작이었어. 11월부터 우리들은 한강을 곳곳이 다녔지. 오직 너희들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말이야.
똥! 남들은 더럽다고 하겠지만, 난 똥에 환호했어. 너희 똥이니까. (이건 마치 아기 엄마가 아기가 잘 눈 똥만 봐도 흐뭇한 거랑 비슷하다고 할까. ㅎㅎ).
똥이 뭐가 더러워. 권정생 선생님 ‘강아지똥’ 읽어 봤어? 또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에 나오는 두더지는 어떻고? 얘는 땅 속에서 올라왔는데 자기 머리에 똥이 있자 그 똥의 주인을 찾아 숲 속 동물들을 다 만나고 다니잖아? 그냥 머리에 똥을 얹은 채로 말이야. ㅎㅎㅎ
너희들 똥이 분명했어. 강가 돌 위에서 겨울 바람에 말라가는 보잘 것 없는 똥. 나는 손으로 일일이 만져보고 냄새를 맡았어. (남들이 보면 좀 이상했을라나?). 똥을 해체하고, 만지고, 똥 속에 뭐가 들었나 살펴보는 동안 나는 슬프더라. 똥 속에 있는 것은 생선 가시 같은 게 아니었어.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우리가 즐겨 먹는 김에 들어있는 방습제 알갱이가 너희 똥에 있더라…
한번은 강물 속 이끼 낀 바위 위에서 너희 발자국을 또렷하게 보았어. 날씨가 영하 10도를 오가는 날이었지. 나는 얼른 신발을 벗었어. 무작정 들어갔어. 살짝 미끄덩거려 넘어질 뻔했지만 민첩하게 균형을 잡았지. ㅎㅎ 사진을 찍고 주변을 샅샅이 살폈어. 너희가 얼굴을 삐죽 내밀어 인사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 숨어서 자고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며 발이 시려운 줄도 몰랐어.
집에 와서 밤에 자려고 보면, 내 다리는 온통 생채기투성이야. 약 바르기 귀찮은데 엄마가 잔소리하셔서 바르는 척이라도 해야 해. 상처난 곳에 약을 바르며 생각하지. 나는 이렇게 약이라도 바를 수 있는데, 또 밥을 꼬박꼬박 잘 먹으니 상처도 금새 나을 텐데 너희들은 어쩌지?
카메라에 포착된 너희 모습에 환호한 것도 잠시, 등이나 허리, 궁댕이 근처에 상처가 있는 걸 보았어. 어쩌다가 그렇게 다쳤어? 너희는 약도 바를 수 없고, 똥을 보니 잘 먹지도 못하는데 이 겨울 어떻게 살고 있는 거야? 나는 카메라에 담긴 너희들 모습을 보고 또 보며, 새벽까지 잠을 설치곤 해. 중랑천에서, 청계천 하구에서 이 밤에 먹을 것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닐 너희들을 생각해.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살길 바라. 아침에 눈을 뜨면 밤새 잘 자지 못해 몸은 찌뿌둥, 얼굴은 푸석푸석한데, 나는 벌떡 일어나. 어서 너희들 보러 갈 채비를 해야 하니까. 요 며칠은 영하 20도를 오가는 날씨라 진짜 춥다. 난 샛강 센터 앞에 앉아 너희들에게 줄 물고기를 나누어 담았어. 혹 너희들 겨울나기에 도움이 될까 싶어 너희 집 근처에 뿌려주려고 말이야. 잘 먹고 건강하게 버텨 주렴. 앗. 이제 편지는 끄읕! 벌써 너희들 찾으러 나갈 시간이 되었네.
#수달의 편지
정은 누님.
춥지요?
요즘 누님이 매일 같이 우리 동네 다녀간다는 말 들었어요. 우리 옆집 사는 논병아리가 말해줍디다. 그런데 논병아리가 깔깔 웃으며 말해요. 아니 왜 맨날 올 때마다 강에 발이 빠져요? 한번은 아예 허리까지 빠졌다면서요?
칠칠치 못하게 그러지 말아요. 우리야 추운 날씨에 얼어붙는 강물이 익숙하지만, 인간들은 안 그렇잖아요? 그러다 냉큼 감기라도 들면, 기침에 콧물에… 요즘 세상에는 어디 밖에서 기침 한 번 마음 편히 못 한다면서요? 그 코로나인지 뭔지 하는 요상한 전염병 때문에 기침하면 남들이 째려보지 않아요? 그러니 누님이 다녀가는 줄 아니께, 물에 좀 빠지고 덤벙대고 그렇게 하지 마시우.
두고 간 물고기는 잘 먹었어요. 넙죽 받아먹기만 해서 염치가 좀 없네요. 전에는 그럭저럭 잘 먹고 살았는데, 한강 지류로 이사오고 나니 만만치 않네요. 요즘 인간들도 먹고 사는 게 힘들다는데, 우리도 서울로 이사 오고 좀 힘드네요. 그래도 이렇게 누님이, 또 누님 친구들이 도와줘서 마음 씀씀이 고마워요.
인간들에게 부탁 하나 전해주세요. 누님. 쓰레기 좀 작작 버리라고요. 서울엔 세련되고 교양있는 사람들만 사는 줄 알았더니 아닌가 보지요? 강가에서 이것저것 먹다 보면, 플라스틱에 스티로폼에… 나도 모르게 쓰레기가 내 뱃속으로 들어와요. 소화도 안 되고, 똥 누기도 힘들어요. 누님. 제발 인간들에게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그리고 기왕이면 쓰레기 좀 줄이고 살라고 말해주세요. 겨울이라 그런가. 사방 천지에 나뒹구는 쓰레기만 보이니 이 수달이 보기에 심미적으로, 정서적으로, 영 좋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구만유.
#수달아 정은아 한강 살자
새해 시작부터 한강조합이 언론에 대거 등장했습니다. 더 정확히는 수달이 주인공인데요. 작년부터 한강조합이 중랑천환경센터, 고덕천을 지키는 사람들, 그리고 박원수 선생님과 최종인 선생님 같은 분들의 도움으로 함께 수달을 찾아다닌 덕분입니다.
한강 지류 3곳에서 수달의 모습이 포착되었고, 그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내고 있는지 그들의 몸에 난 상처와 똥에 든 쓰레기로 알 수 있었어요. 수달이 함께 산다는 반가움도 잠시, 힘들게 사는 모습에 슬프기도 합니다. 저희는 지난 1월 7일 <한강에 수달이 산다>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KBS NEWS 한강에 수달이 산다?…힘겨운 서울살이
한강은 새해 수달과 함께 희망을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수달이 한강에 산다는 의미는, 강 생태계가 건강하게 회복된다는 징표일 겁니다. 지금 발견된 수달들은 건강해 보이지 않습니다. 한강 정은 연구원이 그들의 똥을 일일이 만져 보고 알게 된 사실이지요.
한강을 찾아준 고맙고 반가운 수달들. 그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한강을 만드는 것이 올해 한강조합의 목표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동식물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하다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수달 조사와 모니터링, 강 생태계 복원 활동을 한강이 힘차게 펼쳐나가고자 합니다. 자원봉사자로 함께 해주실 분들을 모십니다. 이런 노력들을 이어간다면, 어쩌면 올해 샛강에서도 수달을 직접 만나실 지도 몰라요.
모래톱이 살아나고 흰목물떼새가 동글동글 알을 낳는 한강. 김소월의 시처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하고 싶은 한강. 거기에 더해 수달이 살기 좋은 한강을 만들고 싶습니다.
수달아, 정은아, 한강 살자!
건강하시길 바라며.
2021.01.11
엄동설한에도 줄기차게 흐르는 강과 숲에서
한강조합 사무국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