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254_사랑하니까 수달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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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4-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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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254_사랑하니까 수달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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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좋게 지내자. C. 최종인)

샛강에서의 분주한 하루가 또 지나갑니다. 저녁 6시 즈음 되어 한강편지를 쓰려고 차분히 앉았습니다. 오늘 서울에서는 동동 떠다니는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예쁜 날이었지요. 

 

일주일에 한 번 보내는 한강편지를 쓸 때에는 한 주 동안의 시간을 되새김질합니다. 생명들도 왕성하고 사람들도 역동적인 한강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나 되짚어 보죠. 그리고 제가 어떤 감정으로 이 순간을 살고 있는지 살펴보기도 해요. 

 

늦게 퇴근하던 어느 저녁이었어요. 당산역에서 환승하며 긴긴 에스컬레이터를 탔어요. 그날 따라 제 앞에는 젊은 연인들이 다정하게 찰싹 붙어 서있더군요. 서로의 허리에 팔을 감고 다정한 눈길을 주고받는 연인들을, 부러운 눈길로 한참 쳐다보고 있었답니다. 노골적으로 쳐다보면 실례가 될 터라 안 보는 척하면서도 자꾸 눈길이 갔어요. 누군가 사랑하고 있는 건 저렇게 좋은 것이구나 새삼 느꼈습니다. 

 

사랑에 빠진 청춘남녀를 보며 저는 지금 누구를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나 생각했어요. 제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사랑하는 대상들이 무척 많구나 싶었습니다. 특히 한강조합에서 일을 하면서 평소 눈여겨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던 자연 속 생명들에 대한 사랑이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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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핀 샛강 C. 정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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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의 매미 구멍들)

생각을 가다듬을 때는 샛강숲으로 산책합니다. 걷다가 멈춰 서서 자연이 들려주는 무궁한 이야기를 들어요. 매순간 달라지는 자연이 경이롭죠. 오늘은 땅에 만들어진 수많은 매미구멍들을 봤어요. 수년의 시간을 기다린 매미들이 드디어 세상에 존재를 알리죠. 태양의 시간과 비의 시간을 혼동한 지렁이들이 말라비틀어진 몸으로 군데군데 죽어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낮에 서둘러 걷느라 콘크리트 쪽으로 기어 나온 지렁이를 흙 쪽으로 옮겨주지 못한 걸 후회했습니다. 

 

원추리와 석잠풀이 여전히 숲 곳곳에 고운 색깔을 입혔군요. 누군가 꽃씨를 뿌려서 피운 코스모스와 개망초와 철 이른 쑥부쟁이까지, 여름꽃들과 성급한 가을꽃들이 이 덥고 습한 여름을 함께 나고 있군요.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왕성한 가시박 덩굴과 자신만만 터를 확장해가는 환삼덩굴도 봅니다. 혼자 서성이는 왜가리, 부지런히 덤불을 드나드는 참새들을 일별하며 수달교 근처로 갑니다. 다리는 물에 잠겨 있군요. 빗물에 밀물이 가세해서 그런 것 같아요. 다행히 벼들은 무사합니다. 

 

모든 것이 더 잘 자라고 생명력이 넘치는 것을 빼고는 대체로 작년 여름과 비슷한 샛강의 풍경과 일상입니다. 그 순간 클래식FM 라디오 세상의 모든 음악이 시작되는데, 전기현 씨가 샛강 이야기를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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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숲의 여름 C.정지환)

샛강에는 숲이 있고 수달도 산다고, 누구는 도심 속 아마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그는 소개합니다. 얼마나 반갑던지요. 샛강에 수달이 산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는 놀라고, 어떤 이는 누가 데려왔나 보다 짐작하고, 어떤 이는 원래부터 강에서 사는 것이구나 생각해요. 수달이 샛강 가족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성과 관심을 쏟았는지는 알 길이 없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샛강 수달이란 말만 들어도 수달언니들과 수달지킴이 최종인 선생님과 때로 염수달이라 불리는 염키호테, 명숙과 선영, 권무와 현섭 같은 많은 사람들이 얼굴이 떠오릅니다. 

 

특히 2021년 겨울 어부에게서 직접 생선을 사온 염수달! 수달이 혹시 샛강에 찾아왔다가 먹을 것이 풍족하면 눌러앉을까 싶어 자기 돈으로 생선을 넉넉히 샀어요. 잔설이 쌓여 질척거리는 샛강변에 생선을 들고 나가 물가에 두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다음 날 가보면 생선은 뼈만 남아 있기도 했는데, 수달이 먹었는지, 왜가리나 고양이가 먹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어요. 

 

그 정성 덕분인지는 몰라도 이제는 한 가족이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경화 은영 연관 정희 같은 수달언니들이,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한강 공원팀이, 그리고 시민과학자들이 수달을 조사하고 지키는 일을 합니다. 수달의 발자국과 똥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죠. 샛강이 아니었다면, 한강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저에게 수달은 수족관과 동물원에서만 만나는 그저 그런 동물이었을 거예요. 그러나 이제 한강의 작은 주민 수달은 우리들에게는 친근하고 소중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삼국유사 속 수달 이야기 

며칠 전에 표정옥 선생님이 새로 낸 책 <지도 위 삼국유사>를 선물해줬습니다. 삼국유사 속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방방곡곡 지역을 바탕으로 쉽게 풀어준 책입니다. 책을 읽다 보니 수달 이야기도 나와서 눈여겨보게 되었어요. 신라시대 혜통이라는 스님이 있었다고 해요. 그는 스님이 되기 전 어느 날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을 한 마리 잡아 죽였는데요. 죽어서 뼈만 남은 수달이 피를 흘리면서도 자기가 살던 곳으로 가서 새끼 다섯 마리를 안고 있더래요. 이 모습을 본 혜통이 충격을 받고 잘못을 뉘우쳐 승려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을 때에도 가짜 수달피 장식을 단 창녀들 묘사를 눈여겨봤어요. 이처럼 지금 우리 곁에 살아가는 수달이 동서양 역사와 문화 곳곳에 흔적이 남아 있네요.  

 

이제는 수달을 아끼고 지켜주려는 이들이 전국적으로 많아졌어요. 개발과 파괴에 살 곳을 잃는 수달들이 있는 반면, 어렵게 살아가는 수달을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늘고 있어요. 

 

마침 다음 달에는 전국의 수달 대변자라고 할까요, 수달 사람들이 대거 모여서 전국수달대회를 엽니다. 진천군과 우리 생다진천팀이 수달들을 후원하여 진천 미호강 미르숲 일대에서 열려요. 

 

우리 강에서 자식들도 잘 키워내며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수달들, 그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싶다면 수달대회에 가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장마가 이어지며 곳곳에 비 피해 소식이 전해지네요. 수달들도 또 수달의 이웃들도 안전하게 올 여름도 잘 이겨내기 바랍니다. 

도심 속 비밀의 숲 샛강에서 

2024.07.10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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