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 265_수달이 정희를 만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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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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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한 강을 따라 구불구불한 길이 나 있는 이곳에서, 구불구불한 길에 사는 구불구불한 사람들과 하루 종일 산책을 했다고 말해줄게, 큰 나무 그늘 아래 작은 나무, 가느다란 나무다리 아래 가느다란 나무 교각들이 간신히 쉬고 있다고,

(김소연 시 강과 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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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아 반가워! C.이정민) 

그녀는 나를 좋아합니다. 무척 좋아하죠. 

 

나를 무척 좋아하니까, 그녀는 내가 어디서 사는지, 무얼 먹고 사는지, 그럭저럭 잘 사는지, 누구랑 사는지, 그런 것들을 궁금해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위해 이것저것 보탬이 될만 하다고 여겨지는 일들을 합니다. 내가 사는 강과 주변의 쓰레기를 치워주거나 쉴 수 있는 곳들을 마련해주기도 합니다. 

 

그녀는 또 나를 좋아하니까, 내가 사는 강가에 매일같이 나옵니다. 나는 낮에는 잠을 자니까, 밤 동안에 내가 걸었던 곳, 내가 쉬던 곳, 내가 밥을 먹던 곳을 킁킁 냄새를 맡으며 찾아다니죠. (아, 이런 게 스토커 비슷한 건가요? 그래도 그녀의 그런 행동들이 싫지 않고 또 내가 방해받지는 않으니 스토커가 아닌 팬이라고 하는 게 맞겠군요.) 

 

나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그녀가 내가 사는 강가에 매일같이 다녀가지만, 나는 그녀를 만나지 못합니다. 달빛을 받으며 돌아다니는 나도 역시 그녀가 남긴 냄새와 발자국 같은 흔적으로 짐작할 뿐이죠. 

 

나는 원래 강 위쪽에서 살았어요. 그러다가 하류 부근에 그녀와 그녀의 일행이 우리들이 살기 좋은 집을 지었죠. 낮은 언덕에는 생동 생추어리라고 (표지판이 붙어 있어서 이름을 알았어요.) 부르는 곳으로 탈바꿈했어요. 나는 그녀가 지어준 집에서 지내며 생동 생추어리를 오가며 놀았어요. 그러다 지난 여름에 홍수가 지며 집이 엉망이 되었는데, 그들이 와서 청소를 해주고 갔어요. 고마웠어요. 언제 기회가 되면 한 번 직접 얼굴을 보여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잘 지내고 있고, 고마워한다는 것을 말해줄까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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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동 생추어리에서의 나무심기 C.이정민)

#정희가 수달을 만났을 때 


흑곰에 대해서 쓴다.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선 아무것도 쓸 수 없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쓰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이를테면 흑곰의 마음 같은 것. 마음을 대신하는 눈길 같은 것. 눈썹 끝에 맺혀 떨어지는 눈물 같은 것. 머나먼 북극권으로 사라지는 한줄기 빛 같은 것. 한 줄기 빛으로 다시 시작되는 오래전 아침 같은 것. 산더미만 한 덩치에 보드랍고 거친 털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제니 시 흑곰을 위한 문장 부분) 

 

저 이 흥분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제 한강조합 사무국 단톡방에 정희 팀장님이 이런 카톡을 올렸습니다. 글쎄, 수달이 그녀의 눈 앞에서 휙 달려가는 것을 봤다고 하네요. 낮에, 바로 눈 앞에서. 

 

그녀는 정말 흥분되는지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그것도 내 앞에서 

한 마리가 

우리 수달인형만한 것이 

 

그녀의 눈에 처음 꼬리가 보였어요. 그 다음, 어어 뭐지? 하는 사이 수달 몸통이 나타나고, 어어 저것은, 하는 사이 수달은 휙 달려갔습니다. 기왕 모습을 보여줄 것이면 정희 팀장님이 핸드폰을 꺼내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즈도 좀 취해줬다면 더 좋았을 텐데요. 장난꾸러기처럼 눈깜짝할 새 앞에 모습을 보이고는 달려가버렸어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지만, 이제 그녀는 생동 생추어리에 살아가는 수달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나무를 심고 둠벙을 만들고 새들과 수달의 쉼터를 만들어 놓은 것을 그들이 실제로 쓰고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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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달연구센터에 간 어린이수달탐사대 C.함정희) 

3주 전부터 중랑천 수달탐사대 어린이들이 주말마다 수달을 알아가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지난 토요일에는 강원도 화천군에 있는 수달연구센터를 다녀왔습니다. 탐사대에 참여하고 있는 세연 엄마 고운 샘이 소감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어떤 생물종이, 왜 멸종위기에 처하는가?

인간중심의 세계관과 기후위기, 인간의 이용에 의한 서식지파괴를 염려하며 수달을 탐사하고 배웁니다. 분명히 아이들은 수달발자국과 너구리발자국을 구별하고 수달똥을 발견하며 기뻐하지만 거기서 나아가 수달은 왜 이리도 만나기 힘들어졌는지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강고운 샘의 어린이수달탐사대 3회차 활동 후기 부분) 

 

고운 샘의 글처럼 강에서 수달을 만나기는 힘듭니다. 그런데 올해 한강조합이 활동하는 여의도샛강 생태공원에서 낮에 수달을 만난 적이 두 번 있었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정성을 쏟는 생동 생추어리에서 코앞에 나타나기도 하네요. 그곳은 작년만 해도 온갖 준설토에 쓰레기가 쌓이고 가시박이 뒤덮여 있던 곳인데 말이죠. 

 

우리들은 수달처럼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우리 곁에서 실제로 같이 살아가는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무더위도 물러가고 완연한 가을이 오고 있어요. 한강조합은 이제 매일같이 생동 생추어리에 나무를 심거나 서식지 보호를 하는 등의 활동을 합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면 강에 찾아온 새들도 많이 볼 수 있고, 흘러가는 강 풍경이 상쾌합니다. 이 가을 나무 한 그루 같이 심어보시는 건 어떤지요? 잠시 땀을 닦는 사이, 눈앞에 수달이 나타날지도 모르니까요. 

 

가을의 강과 숲을 거닐며 행복하시길 바라요. 

 

정희와 수달이 만났던 생동 생추어리에서 

2024.09.25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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