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 269_열매의 마음 정희의 마음

페이지 정보

등록자 hangang 등록일24-10-24

본문

은미씨의 한강편지 269_열매의 마음 정희의 마음
28773_2467037_1729730110531163501.jpg
  (중랑천 예술제에서 C.함정희)

#모과

나무와 나무는 흔들리면서 무언가를 떨구고 있었다. 열리는 말들이 맺히는 시간이다. 맺히는 말들이 풀리는 시간이다. 순하고 고운 눈이 단단한 알맹이로 나아갑니다. 눈을 들어 산등성이를 보면 누군가 무언가 사라진 여백으로 가득하다. 남겨진 네가 남겨진 열매 곁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열매는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음은 회전하고 있었다. 꽃이었다가 잎이었다가. 물이었다가 얼음이었다가. 계절은 돌고 돌아 산비탈의 돌멩이로 쌓이고 있었다. 지나온 흙은 뿌리와 잎과 가지를 품고 있었다. 

(이제니 열매의 마음 부분)

28773_2467037_1729730168105314590.jpg

화요일엔 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내려서 제법 공기가 쌀쌀했어요. 출근하며 옷장에서 얇은 스카프를 한 장 꺼내어 둘렀습니다. 7시가 조금 넘어 퇴근하는데 꽤 어둑하더군요. 비에 젖어 반질거리는 땅바닥에서 초록 열매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모과였어요. 

 

샛강에서 오가는 길가에 모과나무가 몇 그루 있습니다. 봄에는 작은 연분홍 꽃을 피워서 바라보면 괜히 마음이 따뜻해져요. 이 작은 꽃들이 나중에 가을이 되면 굵고 향기 좋은 열매를 맺겠구나 하는 상상도 하고, 소박한 꽃 한 송이가 커다란 모과가 된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죠. 꽃이 지고 손톱만하게 자라기 시작한 열매가 어느새 어른 주먹만한 모과가 됩니다. 잘 여물지 못한 것은 일찌감치 떨어져 썩어가기도 합니다. 매일같이 모과나무를 올려다보다가 비오는 저녁에 쿵 하고 나무에서 떨어진 모과를 마주칩니다. 모과를 주워 물기를 대강 닦고 가방에 넣었습니다. 집에 와서 보니 떨어지느라 상처가 군데군데 있고 틈도 생겼습니다. 그래도 물에 잘 헹궈서 테이블에 올려두었습니다. 희미하지만 달콤한 향이 상처 틈으로 새어 나왔습니다. 

28773_2467037_1729730193815410947.jpg
  (계수나무 아래 샛숲사 사람들 C.정지환)

#계수나무 

아이들은 열매를 따는 걸 좋아하죠. 저의 조카아이 진욱이는 온갖 열매를 좋아했어요. 아파트 화단에 있는 나무 열매들은 물론이고 산에 가도 신기한 열매들은 한두 개씩 꼭 따보려고 하던 아이였죠. 진욱이네 집 식탁에는 작은 풋감이, 도토리 몇 알이, 마로니에 열매 같은 것이 놓여 있곤 했어요. 

 

어른들은 열매를 따거나 하진 않지만 꽃이나 나뭇잎 같은 것에 눈길을 더 줍니다. 요즘 샛강에서는 계수나무가 단연 인기가 높아요. 계수나무 잎은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며 달달한 달고나 향을 풍깁니다. 

 

가장 먼저 계수나무 잎을 가져다준 분은 김정순 선생님이었습니다. 매일같이 샛강숲을 걷는 그녀는 샛강 초입에 서 있는 계수나무들을 참 좋아합니다. 다양한 색깔의 낙엽을 가지고 와서 살롱 식탁을 장식해주기도 했습니다. 동글동글하면서도 하트 모양도 닮은 잎이며 은은하게 단풍이 드는 모양이며 곧게 서 있는 자태까지 모든 게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저도 손님들이 왔을 때 부러 계수나무를 보러 다녀왔어요. 무슨 향기가 나는지 맞춰보세요 하고 퀴즈도 냈지요. 

 

요즘 샛강 사람들은 계수나무를 만나러 자주 가는 모양입니다. 나무 아래서 낙엽을 고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열매를 줍는 아이들처럼, 낙엽을 줍는 어른들은 천진하기만 합니다. 

28773_2467037_1729730238184262441.jpg

(정원오 성동구청장님과 함께 C.임경지)

#중랑천의 결실 

맹꽁이도 사는 거냐고, 그가 물었습니다. 수요일 아침 성동구청에서 정원오 구청장님을 만났습니다. 작년 봄에 성동구와 민관협력 중랑천 생태문화 가꾸기 협약을 체결하고,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꽤 땀과 정성을 쏟았습니다. 구청장께는 그간의 활동 성과를 보고하고 이런저런 협력과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만났습니다. 

 

그는 우리 한강이 중랑천에서 하는 활동 소식들을 꾸준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자마자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신 것에 감사하다고 대답했습니다. 

 

맹꽁이는 물론이고, 자라도 있습니다. 자라가 알을 낳고 모래로 알을 덮었죠. 이후 잘 안 보여서 새끼 자라들이 자라는 것이 실패했나 걱정도 하며 기다렸어요. 한 번은 새끼 자라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것도 보았고, 또 다른 한 번은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작은 녀석을 보기도 했어요. 

 

중랑천 생동 생추어리에서 매일같이 생명들을 들여다보는 정희 팀장님이 말했습니다. 조용한 성품의 그녀는 처음으로 구청장을 만나는 자리인지라,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데도 맹꽁이와 자라 이야기를 하면서는 들떠 보였습니다. 마치 자식 자랑을 하는 엄마처럼 보였죠. 

 

염키호테 대표님이 그동안 쓰레기와 가시박, 환삼덩굴이 덮여 있던 준설토 언덕을 생동 생추어리로 만들어오는 과정을 구청장께 말씀드렸습니다. 쓰레기를 걷어내고 꽃과 나무를 심고 둠벙을 만들어온 시간들, 함께 활동하는 고마운 자원봉사자들과 성동희망나눔 우중가 선생님들 이야기도 했습니다. 자라와 맹꽁이가 자라고, 원앙 선발대가 벌써 200마리 정도 오고, 수달은 아가들을 키우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구청장님이 귀 기울여 듣고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 하자, 염대표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렸습니다. 

28773_2467037_1729730285314143083.jpg

(한강의 중랑천 결실을 보고했습니다. C.임경지)

#정희의 마음 

구청장님과의 미팅을 마치고 나오며 정희가 말했습니다. 저는 기도했어요, 하고 말이죠. 성동구가 우리들의 수고에 대해 공감해주기를, 함께 살아가는 수달, 원앙, 맹꽁이, 자라와 같은 생명들에 대해 같이 기뻐해주기를 기대했던 거지요.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이렇게 든든한 지지까지 받고 나니, 더더욱 중랑천을 가꾸는 일에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당장 11월에는 성동원앙축제를 엽니다. 체험하고 소비만 하는 축제가 아니라, 배우고 공감하는 기쁨의 축제가 되도록 준비하려 합니다. 

 

강물처럼 흐르고 윤슬처럼 빛나라 

지난 일요일 열렸던 중랑천 생물다양성 예술제 제목이었습니다. 예술제는 화창한 날씨에 더없이 멋진 시간이었지요. 성동원앙축제도 강에 깃들어 사는 모든 존재들이, 그 존재들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다같이 윤슬처럼 빛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어제 상강이 지나고 오늘은 조금 쌀쌀한 날입니다.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고, 윤슬처럼 반짝이는 일상 이어가시길 빕니다. 

 

2024.10.24

한강 드림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Office. 02-6956-0596/ 010-9837-0825
서울시 성동구 아차산로 3 (성수동 1가, 두앤캔하우스) 305호
후원 계좌사회적협동조합 한강우리은행 1005-903-602443
홈페이지 http://coophangang.kr

 블로그 : https://blog.naver.com/coophangang

인스타그램 아이디 : @coophangang

페이스북 링크 : https://www.facebook.com/coophangang

오픈톡방 : https://open.kakao.com/o/gJtFoiPe
카카오톡 채널: http://pf.kakao.com/_eQzgG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조합원이 되어 
강문화를 시민과 함께 즐기는 사회를 만들어요!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한강편지를 전하는 우체부가 되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