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180_수달, 입춘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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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3-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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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180
수달, 입춘이구나!

아지랑이 구름을 뿜어내고,

우주의 기운을 뭉쳐 지녀 신묘한 광채를 발하네.

새 짐승은 온순하고벌레와 뱀은 어질며

초록은 향기로워라.’

(이곡 금강산 장안상 중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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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새해를 시작하며 친구로부터 일력을 선물받았습니다민음사라는 출판사에서 만든 것으로 매일 옛 고전에서 좋은 문장들을 골라 넣었더군요하루하루 일력의 종이 한 장을 뜯어내며 적힌 문장을 읽습니다그리고 위의 문장은 바로 지난 2월 4일 입춘에 적힌 문장이었습니다.

 

한겨울 한파를 겨우 비껴선 2월 초순에 입춘이 있습니다아무리 입춘이라고 한들 아지랑이 하며신묘한 광채를 발하는 대기벌레와 뱀이 있고향기로운 초록이 있는 때는 아니지요그건 한 달쯤 뒤의 풍경이 아닐까 합니다.

 

어릴 때부터 저에게 입춘은 은근한 설렘을 동반하는 단어였습니다그건 아마도 어머니가 입춘 날에 샛절 드는 날샛절 드는 시간을 중시하고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려던 것을 봐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물론 여자로서 그리 유쾌했던 기억만은 아니었던 것이제주에서는 샛절 드는 시간에 여자는 남의 집을 방문하거나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어요. (뭔가 부정탄다는 의미였을 텐데세시풍속 자료를 보니 여자가 방문하는 집에 그 해 잡초가 많이 난다고 했다네요.)

 

입춘 아침에 아침 라디오에서도 김병훈 시인의 입춘이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입춘(立春)

봄의 시작이 아니라

깊이 잠든 봄을 깨우는

알람시계의 멜로디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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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이 바로 입춘이었습니다저희는 입춘맞이 샛강놀자 시민축제를 크게 열었어요바로 다음 날은 정월대보름이라 내친 김에 두 절기를 묶어 봄맞이 달맞이 강강수월래 축제도 같이 했습니다주중에는 내내 추운 날이 대부분이었는데마침 반짝 날도 풀리고 미세먼지 없이 맑았습니다족히 800명은 넘는 시민들이 여의샛강 축제장으로 몰려들었어요.

 

지난 주 실내마스크가 해제되었죠그건 단지 마스크를 실내에서도 안 써도 된다는 의미 정도가 아니라 3년여 기간 동안의 긴긴 코로나 터널의 끝을 나가는 기분이 아니었을까요아이들을 데리고 축제에 온 시민들은 비록 여전히 마스크를 쓴 분들도 많았지만 표정이 한결 밝았습니다목소리도 경쾌하고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어요.

 

작년 하반기 여의샛강 시민참여단 샛강놀자 15개 팀들이 부스를 차렸고여의못 광장에는 전래놀이 마당을 펼쳤습니다윳놀이투호제기차기비석치기그런 판들이 펼쳐지고 누가누가 잘하나 대회도 열렸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제기를 찼는데 겨우 한 개를 찼네요좀더 연습이 필요합니다.)

 

커피를 내려주며 기후변화 이야기를 하는 팀켈리그라피로 멋진 아이템들을 만드는 팀대보름 소원 쓰면 부럼 나눠주는 팀, 2030 청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써달라는 청년팀, ESG 실천 체험팀비 하우징을 제작하여 벌들이 입주할 수 있게 하려는 팀샛강 식물 전시를 하는 팀수달에 대한 퀴즈 맞추기 놀이를 하는 팀맨발걷기를 하는 팀 등등


주제도활동 방식도세대도 달라서 그 다양성이 샛강의 생물다양성만큼이나 풍부했습니다그 중에 어린 아이들을 자연에서 놀게 하자는 공공시민팀은 보니 아이들에게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밥상을 차리게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더군요어른들에게는 별 볼 것이 없었는데부스 앞에 서 있던 선생님이 저의 팔을 잡아 끌었습니다아이들이 차린 밥상을 보라고벌써 초록이 있다고요

 

아이들은 낙엽이나 시든 풀에 덮인 땅을 파헤쳤나 봅니다그 아래 부드러운 초록 풀들이 어느새 자라고 있었던 것이죠며칠 전만 해도 너무 추워서 동동거렸는데그 여린 풀들이 그렇게 자라 있는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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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도 수달 모니터링을 했습니다한겨울에 센서 카메라를 확인할 때마다 우리들은 은근한 걱정을 합니다너무 추워서 견디기 힘들어서 떠났으면 어쩌지수달들은 이 겨울을 어떻게 이겨내지하는 걱정이죠고맙게도 카메라에는 씩씩하게 잘 지내는 수달 모습이 보입니다이제 입춘도 지났으니 혹독하게 추운 시절은 끝났지요수달고맙다수달잘 견디었구나!

 

수달만은 아닐 것입니다선생님은 어떤 겨울을 보내셨나요혹한의 시간잘 견디셨는지요입춘과 대보름을 지나며겨울을 잘 이겨낸 모든 존재들에게 고마움과 축복의 마음을 갖습니다잘하셨습니다이제는 대지도 깨어나고봄도 오고우리들에게도 생명의 기운이 물오르는 일만 남았습니다.

 

언제나 봄날처럼 다사롭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2023.02.08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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