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183_다시, 정희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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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3-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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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183_
다시, 정희의 마음

그간 지나온 시간을 돌아봅니다.

센터에 물이 차서 퍼내던 일가시박 제거하던 일샛숲광장에서 점심 먹던 일토닥토닥 다투던 일유유자적하던 날샛강이 침수되었던 일카메라가 물에 잠겨 망연자실했던 일두꺼비가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졌던 일 (현수막 안 해줬다고 유팀장님이 계속 뭐라 하셨던 일), 맹꽁이 울음소리에 로또 맞은 듯 기뻤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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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 전 여름 한강조합에 왔던 정희팀장님이 2월말로 한강을 떠납니다어제는 직원들이 함께 그녀를 환송하는 식사를 했습니다그간의 시간을 회고하며 그녀는 지난 날이 다 행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생각이 달라도 다 유유자적 한 곳으로 흘렀다고 말했습니다떠나는 날 적지 않은 금액을 기부하기도 해서 고맙기도 하고 어쩐지 미안하기도 했어요한강조합이 주는 월급이 그리 많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먼저 노을이 있습니다정희가 처음 한강조합에 면접보러 온 날 해가 지며 노을빛이 서쪽 하늘에 번져 있었습니다설레고 약간 떨리기도 한 마음을 누르며 정희는 노을이 번진 하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넉넉히 일찍 도착해서 샛강생태공원으로 들어서 오솔길을 걸었습니다.’ (2021년 8월 한강편지 정희의 마음’ 중에서)

 

정희팀장님이 한강에 입사했을 때 저는 정희의 마음이라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설레고 행복한 마음으로 시작했던 그녀의 마음을 상상했죠함께 일하면서 본 그녀는 짐작했던 대로 자연의 모든 것들을 사랑했습니다샛강의 동식물들은 그녀의 애정어린 관심을 받았어요수달의 흔적을 쫓아다니다가 미끄러져 옷이 진흙투성이가 되기도 했지만카메라에 수달 모습이 담기면 기뻐했습니다.  

무엇보다 샛숲학교에서 정희가 했던 수업들이 특별했습니다수업 대상들은 다양했는데 유야어린이가족만이 아니라 직장인들이나 어르신들을 위한 수업도 있었지요그 중에서 어르신들에게 그림책을 가지고 수업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그림책을 매개로 어르신들의 살아온 추억을 돌아보게 했죠어떤 분은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고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따뜻한 기억을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샛숲학교에서 생태전환교육을 시작하고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친 것도 그녀였습니다샛강에 와서 단순히 생태를 체험하고 가는 수업이 아니라배우고 자원봉사하고 직접 느껴보며지구생태계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자라도록 교육하는 일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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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샛강이 네 차례나 침수되어 생태전환교육을 하기에 샛강의 나무들이며 환경이 어수선하고 지저분해 보이기까지 했던 적이 있습니다진흙탕이 된 길을 걸으면 신발에 온통 진흙이 달라붙었죠그러자 그녀는 아이들에게 맨발로 진흙길을 걸어보게 합니다그리고 습지의 특성을 알려주고감조하천인 샛강에 대해 설명합니다맨발로 대지를 접촉한 아이들을 부모나 어른들이 기다렸다가 발을 씻어줍니다그런 식으로 아이들은 자연을 만날 뿐만 아니라 가족의 사랑도 덤으로 느낄 수 있게 했어요.

 

큰 규모의 교육이나 행사가 많아 과연 잘 치를 수 있을지 제가 걱정하는 소리를 하면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대표님괜찮습니다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저를 안심시키던 정희 팀장님남들에게 뭘 부탁하길 어려워해서 혼자서 무거운 짐을 다 나르기도 하고일찍 와서 준비물을 손수 다 챙기던 그녀… 돌아보면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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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의 애칭은 가는비’. 가늘게 내리는 비처럼 세상을 적시는 사람이 되라고조용히 내리면서도 생명을 키우는 비처럼 살라고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 지어준 별명이라고 합니다정희가 한강에서 보낸 시간은 채 두 해가 되지 않지만그 사이 가는 비는 우리들을 촉촉히 적셔 따스함으로 채워주었습니다.

 

정희 팀장님함께한 시간 고마웠습니다가는비가 가는 곳마다 생동하는 생기가 퍼져나가길 바라요언제나 웃음과 행복이 퐁퐁 솟아나길 바라고요.

  

#다시

한결같이 연하고 수수한 나무에게

삼월도 따듯한 기운을 전해주었으면 한다

(박준 삼월의 나무’ 일부)

 

이제 삼월입니다겨울 동안 숲은 준비하는 시간이었다면이제 본격 생동하고 살아가는 시간입니다자연의 시간에 맞춰 저희 한강 사람들도 분주하게 숲과 강가에서 일을 할 것입니다나무를 심고새들을 살피고동식물들의 서식지를 가꿀 거예요.

 

강과 숲에서 함께 일하고 싶다면 언제든 환영합니다같이 산책하는 것도 물론 좋고요보름 정도면 그동안 기다리던 명자꽃 소식도 전할 수 있겠지요초봄에는 샛강 입구에 미선나무 몇 그루도 청초한 꽃을 틔웁니다.

 

행복한 봄 맞으세요.

 

2023.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