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은미씨의 한강편지214_I Will_ow 버드나무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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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3-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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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214_I Will_ow 버드나무의 의지

(노을공원 북사면의 가시박 덩굴. 마치 코끼리가 나무를 타고 앉은 모양새입니다.)

긴 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더없이 날씨도 좋았고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던 추석 연휴였어요. 저도 느긋하게 푹 쉬었습니다.

일찍 일어난 아침에는 동네 하늘공원과 노을공원 자락을 걸었습니다. 눈에 익숙한 메타세쿼이아, 모감주나무, 산딸나무, 아카시나무 같은 키가 큰 나무들, 쥐똥나무, 화살나무, 개나리 같은 관목들, 아직도 달려 있는 몇 송이 수국과 꽃무릇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대단한 기세를 부리는 가시박을 보았습니다.

가엾게도, 몇몇 나무들은 완전히 가시박에 갇혔습니다. 어떤 나무는 코끼리가 타 앉은 모양새처럼 보였습니다. 겨우 보일락 말락한 나무의 아래 그늘을 미루어 아까시나무인가 버드나무인가 할 뿐이었어요.

난지천을 끼고 있는 노을공원 북사면을 걷다 보면 가시박이 숲의 한 면을 장악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른 잎사귀들은 줄기 따라 힘차게 뻗어나가 있습니다. 그 아래 몇 그루의 나무들이 있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나무들을 완전히 덮은 가시박들은 가을 볕과 대지의 물기를 한껏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온몸이 가시박에 칭칭 감긴 나무들은 어둠의 동굴에 갇힙니다. 언제 빛을 다시 보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가시박 씨앗들이 알알이 여물며 가을을 나고, 차가운 겨울이 오고서야 푸르등등한 기세가 꺾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무를 덮은 그 모양새 그대로 말라서 겨울을 나기에, 몇 계절을 해를 보지 못한 나무들은 창백해질 것입니다.

(가시박의 생장속도가 대단합니다. 나무들이 고생입니다.)

(가시박은 별사탕 같은 열매를 맺는데 가시가 박혀 있어 가시박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무의 마음에 대해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에 보드라운 흙에 뿌리를 내리며 섬세한 잔뿌리로 물을 빨아들이던 기쁨을 생각합니다. 그 물을 가지 끝으로 보내어 연한 녹색 잎을 틔우고 기지개를 켜듯이 가지를 뻗으며 해를 향하던 설렘을 상상합니다. 햇살의 감미로운 어루만짐을 느끼며 꽃을 틔우고 부지런히 멀리 나아가려 했던 패기를 그려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온몸을 덮치고 집요하게 감싼 가시박을 만났을 때, 나무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동굴에 갇힌 나무는 더 이상 달빛에 춤을 추거나 바람에 노래할 수 없습니다. 자유를 잃었으니까요.

나무의 처지를 짐작하는 사람들이 가시박 줄기를 잡아당겨 끊어낸 것이 보입니다. 저도 줄기 중간을 잡아당겨 땅에 놓은 다음 별사탕처럼 여물어가는 씨앗들을 밟았습니다. 발 밑에서 으깨지는 씨앗의 촉감과 풀냄새가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가시박은 물길을 따라 번져 강숲마다 자리를 잡습니다. 한강조합이 일하는 중랑천이나 여의샛강생태공원도 예외가 아닙니다. 가시박에 갇힌 나무들이 살아가는 일을 포기하기 전에, 되는대로 나무들을 구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은 마침 중랑천을 갔더니 어떤 노인이 혼자서 가시박을 잘라내고 있었습니다.)

샛강의 어린이습지원 한가운데에는 버드나무가 한 그루가 있습니다. 한강조합이 처음 샛강에 왔을 때는 가시박에 눌려 거의 죽어 있었던 것을 가시박을 걷어내자 살아났습니다. 한 번은 태풍 링링이 와서 주저앉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 나무에게 조금 도움을 줬을 뿐인데, 살고자 하는 의지로 잘 버텨냈습니다. 이제는 의연한 청년같이 늠름합니다. 이 나무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전부터 했는데 이번에 산책을 하며 떠올랐습니다. ‘나는 할 것이다. 해내고야 말 것이다’ 그런 의지를 가진 나무라는 의미에서 ‘I Will Willow’, 줄여서 ‘I WilI_ow’라고 불러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