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218_시각장애인이 자연을 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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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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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218_시각장애인이 자연을 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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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숲 무장애나눔길을 즐기는 사람들 C. 정지환)

미국의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대성당>에는 시각장애인과 함께 TV를 보다가 대성당을 그리는 남자가 나옵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아내가 오랫동안 책 읽어주는 자원봉사로 교류하던 시각장애인이 어느 날 그들 부부의 집에 놀러 옵니다. 남자로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눈이 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길이 없기에 그 방문이 달갑지 않습니다. 어색한 방문의 날 저녁 그는 같이 앉아 TV를 보게 되는데 마침 대성당을 소개하는 프로가 나옵니다. 그러자 시각장애인은 남자더러 같이 대성당을 그려보자고 합니다.   
  남자는 내키지도 않고 대성당이나 그리기에 관심도 재주도 없지만 장애인이 부탁하니 어쩔 수 없이 그리기 시작합니다. 남자가 그리는 손 위에 장애인이 손을 얹어 그림을 그립니다. 그렇게 한참 그리다가 장애인은 남자에게 눈을 감고 그려보라고 합니다. 그렇게 눈을 감고 그림을 그린 남자는 나중에 눈을 뜨고 보라고 해도 한동안 눈을 감고 그림을 봅니다. 그는 집안에 있었지만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색다른 감각을 느낍니다. 그가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It’s really something.)”이라고 감탄하며 소설이 끝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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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샛강생태공원에서 자연을 만나는 시각장애인들 C. 장애와숲)

  지난 10월에 여의샛강생태공원에 미국인 친구 앤이 왔습니다. 저의 대학 은사님의 여동생인데 평소 페이스북을 통해 저희 한강조합이 샛강에서 어떤 활동들을 하는지 관심을 갖고 보고 있었죠. 제가 샛강 안내를 하며 공원을 배리어 프리 공원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시각장애인이나 보행이 어려우신 분들을 위해 산책로도 무장애나눔길로 만들고 프로그램도 운영한다고 설명했어요. 장애인을 영어로 ‘disabled people’이라고 하자, 그녀는 disabled 대신에 요즘엔 ‘differently able (다른 능력이 있는)’ 또는 ‘alter able’이라는 말을 쓴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전에 어떤 필리핀 여성이 장애가 있는 자기 자식에 대해 “내 아이는 특별한 아이입니다.”라고 말했던 기억도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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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을 위한 탐조 여행을 마련했습니다.)

  
지난 주에는 ‘여의샛강 시민참여단 샛강놀자’ 팀 중 하나인 ‘장애와 숲’에서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샛강투어를 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샛강의 가을을 보고 듣고 만지고 느꼈을지 궁금하더군요. 이제 11월이 되어 새를 보기 좋은 계절이 되었는데요. 저희 한강조합은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샛강 탐조여행도 준비했습니다. 탐조여행 전문가인 이병우 에코버드투어 대표님이 안내합니다. 

소설 <대성당>의 남자는 시각장애인의 요청으로 눈을 감고 대성당을 그리며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그전에는 별다른 관심도 없이 TV에서 하니까 보기나 하던 대성당을 새롭게 발견하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그는 시각장애인들이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충분히 보고 느끼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시각장애인이 더 자세히 보고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몰입과 상상력을 더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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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8일 진천 미호강에서 열린 생물대탐사에서 어린이 가족들이 많이 참여했어요.)

  
#진천 아이들의 208
지난 토요일 (10.28)에 미호강에서는 진천에 사는 아이들이 새롭게 보는 경험을 했습니다. 생물대탐사에 참여하여 208종의 생명들을 만났습니다. 그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미호강의 자연은 그저 지나가며 멀리서 보던 풍경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문가의 인솔로 그들은 물고기와 새, 곤충과 풀, 그리고 양서파충류를 직접 보고 만날 수 있었는데요. 그토록 많은 생명들이 깃들어 살아간다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 자연은 그들에게 새로운 의미가 됩니다. 

한강조합이 강에서 하고 싶고, 해오는 일들이 그런 것입니다. 멀리 풍경으로 존재하는 강과 숲을 사람들 곁으로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동식물들이 잘 살아가게 하고, 사람들도 고마운 마음으로 공존하며, 결국 그로 인해 강과 자연을 사랑하게 하고 싶습니다. 미호강에 살아가는 208종의 생물들을 만난 아이들은 그 강에 함부로 쓰레기를 던지지 않을 것이며, 강을 볼 때마다 그 생물들이 사는 모습을 상상하고 또 애정을 갖고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요. 

어제는 고라니 소식도 있었습니다. 저희가 중랑천에 사는 수달 등을 보려고 관찰카메라를 설치했는데, 중랑천과 청계천이 만나는 합수부 부근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찍혔습니다. 반가우면서도 걱정이 많이 됩니다. 이 순진무구한 생명이 과연 도심 한복판 중랑천/청계천에서 어떻게 안전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우리는 어떻게 지켜줄 수 있을지 마음이 급해집니다. 

이런 중랑천의 고라니와 수달, 원앙과 흰목물떼새 같은 아이들을 지키고 사랑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중랑천 시민포럼’도 다음 주부터 시작합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새로이 생명들을 보거나 알게 되고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라며 감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중랑천에 온 고라니가 모쪼록 안전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소설 ‘모비 딕’에는 ‘내 영혼에 축축한 11월의 비가 내릴 때’라는 표현이 있어요. 오늘내일 마침 11월의 비가 내린다고 하네요. 차분한 가운데서도 마음에까지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11월이 되시길 빕니다. 

낙엽지는 나무들의 평안을 전합니다. 

2023.11.02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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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속으로 함께 걸으시겠어요? 오늘은 시를 읽으며 산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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