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232_랑랑이와 나, 장애에 대하여

페이지 정보

등록자 hangang 등록일24-02-08

본문

은미씨의 한강편지 232_랑랑이와 나, 장애에 대하여
28773_1707375969.jpg

(이유지 아가와 랑랑이. 둘 다 두살을 막 넘겼어요.)

랑랑이와 저는 부쩍 가까워졌습니다. 

제가 부르는 소리에 곧잘 대답하고 저를 편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가끔 책상 위에 랑랑이를 올리면 자리를 잡고 앉아 오래도록 제가 일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봅니다. 저는 어느새 집에 있는 고양이 마루에게 그러듯이, 랑랑이에게도 저를 ‘엄마’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한강편지에서 랑랑이 소식을 전하고 나서 몇몇 분들이 랑랑이를 보러 왔습니다. 간식을 사들고 오거나 쓸만한 물건들을 가져다줍니다. 중랑천에서 보름 동안 굶고 추위에 지쳤던 랑랑이는 이제 먹을 것이 풍족하고 부드러운 깔개와 작은 집도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랑랑이를 보러 올 때마다 저는 들떠서 말하곤 했습니다. 강가에 버려졌던 고양이를 구조한 거라고, 쓰레기처럼 갈대 덤불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고, 발견한 당시 등가죽과 뼈가 붙어 있었다고 말이죠. 사람들은 랑랑이를 어루만져 주거나 간식을 내주면서, 어떤 인간이 이런 예쁜 고양이를 버렸나, 몹쓸 사람이다, 발견하고도 그대로 방치한 노인은 또 뭔가 하며 연민의 마음을 보입니다.
28773_1707376040.jpg

(자기 집에서 편하게 쉬고 있는 랑랑이, 제 고양이 마루가 쓰던 걸 가져왔습니다.)

하루는 이런 제 자신이 경솔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들었던 황희 정승과 농부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황희가 길을 가다가 소 두 마리를 데리고 밭을 가는 농부를 만났습니다. 두 마리 중에서 누기 밭을 더 잘 가는지 물었죠. 그러자 농부는 귓속말로 대답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소도 귀가 있으니 자신에 대한 나쁜 말을 하면 들어서 기분이 좋지 않을 거라고 했다지요. 

갈대 사이 아무도 안 보이는 데 버린 것은 죽으라는 거나 다름없다, 추운 겨울에 버린 것이 사림이 할 짓인가, 먹을 것도 없었다 등등 이런 말들을 몇 차례 떠들고 나니 문득 조용히 옆에 앉아 있는 랑랑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신이 버림받은 존재였다는 말을 여러 번 듣는 게 좋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이제는 말을 좀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랑랑이 앞에서는 좋은 말만 하려고 합니다. 요즘은 오시는 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랑랑이는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습니다. 한강의 식구가 되었으니까요.” 
28773_1707376109.jpg

(여의샛강생태공원에서 발달장애인 환경지킴이들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인 환경지킴이
어제는 일자리 채용 면접에 참여했습니다. 한 명의 남성과 세 명의 여성으로 이루어진 네 명의 면접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누구는 목소리가 알아듣기 어려울 만큼 작았고 누구는 지나치게 컸습니다. 다들 긴장한 탓이겠지요. 재작년 가을부터 시작한 발달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지원한 사람들입니다.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은 2022년부터 영등포장애인복지관과 함께 여의샛강생태공원에서 환경 보전에 기여하는 일을 하는 장애인일자리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샛강에 오면 쓰레기를 줍거나 꽃을 심는 일을 하는 장애인 환경지킴이들을 보게 되죠, 

지난 주에 이재영 교수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전 국가환경교육센터장인 그에게 샛강에서 어떤 교육과 프로그램을 운영하는지 설명했어요. 그 중에 우리가 ‘Social Barrier Free (모든 계층에게 장애가 없는)’ 공원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말을 했어요. 그 일환으로 장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과 장애인 일자리 사업을 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더니 그는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는 장애인이라는 구분이 아예 없다는 말을 해줬습니다.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장애가 있을 수 있고,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지원을 해주는 전략을 택한다는 거죠.  
28773_1707376174.jpg

(환경지킴이들의 활동 모습)

다시 랑랑이 이야기를 하자면, 랑랑이는 뒷발이 불편해 보였습니다. 걸을 때 절룩거리길래 장애가 있어서 버렸나 보다 하는 말들을 했습니다. (이 말 역시 랑랑이도 다 들었을 텐데 말이죠…) 지난 토요일에는 뒷발에서 제법 큰 굳은 살 상처가 떨어져 나와 깜짝 놀라고 병원에 데려갔습니다. 수의사는 랑랑이가 어딘가 찔리거나 다친 상태로 방치되었는데, 잘 소독하고 연고를 꾸준히 발라주면 나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제는 나머지 발에서도 상처가 떨어져 나왔고 맨들맨들한 발바닥이 드러났어요. 이제 랑랑이는 가뿐한 발걸음으로 걷고, 구부정했던 허리도 좀 펴졌습니다. 

랑랑이와 지내면서 장애에 대해 생각해보곤 합니다. 누구나 조금씩 불편한 것들을 지니고 있지 않나 하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게 도드라지면 ‘장애인’이란 분류를 하는 것이겠지요. 저 역시 살면서 일시적이거나 장기적이거나 어떤 장애들을 안고 삽니다. 나이가 들면 장애라 할 만한 것들이 점점 더 늘겠지요. 

올해 샛강에서 일하게 될 발달장애인 환경지킴이들 활동을 기대합니다. 기존 2명에, 어제 면접에 참여한 4명 중에서 2명을 선발하게 된다고 하네요. (다 뽑아주면 좋을 텐데 무려 2배수 경쟁이네요.) 그들이 샛강에서 일하며 생태환경을 지키는 시민으로서 긍지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일부터는 설 연휴입니다. 많은 분들이 가족과 친지들을 만나게 되겠죠. 오랜만에 만나면 부디 따뜻한 말, 힘을 주는 말을 건네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랑랑이 앞에서 했듯이, 약점을 꼬집거나 상처가 될 법한 말은 조심해야겠습니다.  
28773_1707376339.jpg

(아가와 고양이처럼 평온한 설 연휴 보내세요.)

더없이 행복한 설 연휴 보내세요. 
2024.02.08
한강 드림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Office. 02-6956-0596/ 010-9837-0825
서울시 성동구 아차산로 3 (성수동 1가, 두앤캔하우스) 305호
후원 계좌사회적협동조합 한강우리은행 1005-903-602443
홈페이지 http://coophangang.kr

1월 후원자명단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정기후원

강고운 강덕희 강명구 강봉준 강원재 강태환 경규명 고건순 고대현 고연희 곽나영 곽정난 구다은 권남희 권명애 권태선 기경석 김갑중 김경숙 김광진 김규원 김다은 김달수 김래영 김명숙 김명신 김명자 김미라 김미란 김미정 김미현 김민규 김병선 김보영 김상기 김석환 김선영 김성준 김수경 김수종 김양경 김영 김영경 김예진 김용수 김용진 김용찬 김원 김윤경 김율립 김은경 김인경 김정순 김종연 김주철 김지영 김진수 김진희 김창수 김창영 김창직 김철기 김향희 김현섭 김현수 김현숙 김혜현 김홍재 김희 나언성 나정희 남광우 남윤숙 남윤희 남진현 남현주 류승아 명재성 명정화 문경자 문민선 문상원 문순심 문옥자 민경훈 민난주 민병권 박경만 박경화 박광선 박근용 박미정 박비호 박선후 박소영 박소윤 박수영 박수정 박애란 박영미 박영선 박영희 박이사벨 박인숙 박재원 박종호 박주희 박진선 박창식 박평수 박향미 박현진 박혜영 배은덕 백소영 백윤미 백은희 생태미식연구소 서광석 서미윤 석락희 성광철 성무성 성준규 손기철 송선옥 송예진 송은주 송채원 신동섭 신동인 신동학 신석원 신재은 신향희 신현숙 심봉섭 심은영 심재훈 안경선 안동희 안상모 안숙희 안영미 안재홍 안정호 안정화 양경모 양금자 양숙 양지특허법률사무소 엄은희 염경덕 염해윤 염형철 오경자 오미화 오수길 오창길 온수진 온하연 원동업 원미영 유권무 유선희 유영아 유형식 육현표 윤나경 윤유선 윤정숙 윤주옥 이강인 이강희 이경렬 이규철 이로울 이미란 이바다 이병덕 이상명 이상수 이상영 이상헌 이상호 이상희 이수용 이숙희 이승규 이영옥 이영원 이왕용 이용태 이유정 이유진 이윤영 이윤정 이인현 이재권 이재용 이재은 이재학 이재훈 이정든 이정미 이정심 이정원 이정윤 이정은 이정효 이진미 이철수 이한진 이호준 이효미 이후정 이희예 임선양 임설희 임윤정 장덕상 장영탁 전주경 전하나 정경화 정길화 정명희 정미나 정상용 정애란 정영원 정용숙 정원락 정재윤 정지만 정진주 정혜진 정희걸 정희규 조경원 조성훈 조수정 조윤경 조은덕 조은미 조은민 조은애 조은철 조이희 조현욱 조현철 조혜진 조호진 조희경 지용주 진재필 차봉숙 차수진 차재학 채은옥 최병언 최봉석 최선미 최성미 최시영 최윤주 최정연 최정해 최종인 최충식 최현식 하정심 한경미 한상희 한석찬 한지은 함정희 허돈 현경학 홍미경 홍선 홍영선 황영심

 

특별후원

구연찬 김두림 김미란 김선영 김용진 김용태 김정순 서광옥 송윤정 신혜원 양경모 양충모 염정인 염형철 윤상은 이정은 임설희 정세연 조예진 조은덕 조은미 조은애 조은철 함정희 UK ONLINE GIVING FOUNDATION

 

물품후원

㈜ 피디에이치아이엔씨

 

갑진년 1월에 맞이하는 한강식구

고연희 김관식 김미열 김은경 김현수 박수정 박은희 박향미 서미윤 원미영 이옥심 이재영 정상용 최수경 최시영 최현숙 홍성완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조합원이 되어 
강문화를 시민과 함께 즐기는 사회를 만들어요!
후원자가 되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