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247_화폭 앞에서 나비가 춤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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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admin 등록일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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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247_화폭 앞에서 나비가 춤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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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을 그리는 신은미 화가 C.정지환)

장미보다 붉고 능소화처럼 고운 비단 치마를 입은 여인이 화폭 앞에 섰습니다. 그녀가 붓을 들자 봄바람도 숨을 죽이고, 버드나무도 잠시 흔들림을 멈추었어요. 붓은 가볍게 화폭 위에서 움직였고, 이내 라일락이 가득 피어났어요.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 

노랑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유진규 마임이스트가 동그란 빨간 코를 달고 아이처럼 몸짓을 합니다. 나비를 부르고 나비와 함께 춤을 춥니다. 꽃송이들이 여기저기 흩어집니다. 꽃송이들이 노랑나비 흰나비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어디선가 나비떼가 날아옵니다. 샛강으로 나지막하게 흐르는 물가에 핀 노랑꽃창포에서 노닐던 나비들입니다. 유진규도 한 마리 나비가 되었습니다. 맨발과 드러난 종아리, 두 팔을 벌려 가볍게 날아오르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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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님 그리워 운다 

(중략) 

너영 나영 두리둥실 놀고요 

낮에 낮에나 밤에 밤에나 

참사랑이로구나 

(제주 민요 너영 나영 부분) 

소리꾼 박창준이 어깨춤을 추며 노래를 부릅니다. 주위에 모인 사람들이 노래를 나직이 따라 부릅니다. 저도 제주 어멍이 즐겨 부르던 이 노래가 귀와 마음에 익숙한 터라 따라 불렀지요. (우리 어멍이 평생 즐겨 부르시던 애창곡 민요입니다.) 

 

근처 버드나무에서 놀던 박새 한 쌍이 날아와서 사람들을 봅니다. 정겹게 앉은 그들도 밤이 되면 님이 그리워 울었을까요? 박새 부부는 근래에 아가들을 잘 키우고 이소까지 시켜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람들의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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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배일동 명창이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딸 청이를 뱃사람들에게 팔아버리고 후회막심한 슬픈 아비가 되어 그는 회한이 가득한 소리를 했습니다. 물가에서 노닐던 청둥오리 부부도 마음이 아팠는지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배회합니다. 

 

저 아비는 어찌하여 어린 딸을 망망대해 인당수에 보냈을꼬 무슨 심정으로 그렇게 해야 했는지 청둥오리 부부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심학규의 절규를 듣던 할아버지가 늙은 손등으로 눈가를 훔칩니다. 어떤 이는 안경을 벗어서 눈물을 닦습니다. 한숨이 고이며 시간이 멈춘 듯 했습니다. 그러다가 청이를 만나는 대목에서는 다들 안도했습니다. 청둥오리 부부도 그제야 제 갈 길을 가더군요. 

 

라일락 꽃향기를 화폭에 담았던 신은미 화가가 이번에는 매섭게 날아오르는 매를 그렸습니다. 새는 포효하듯 공중을 날아갑니다. 순간 주변에 긴장하는 공기가 흐릅니다. 구경하던 박새들은 어느새 보이지 않습니다. 까치들도 어디론가 가버렸어요. 

 

하얀 모시저고리와 분홍 치마를 입은 류수지 거문고 연주자가 나섰습니다. 뚱땅 띵띵땅 음악이 흘러나오자 다시 차분해졌습니다. 부드러운 거문고 선율에 강물도 경쾌하게 흘러갑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둥글게 모여 섰습니다. 서로 손에 손을 잡았습니다. 소리꾼들이 강강수월래를 선창했습니다. 화가도 마임이스트도 거문고 연주자도, 한복을 입고 나온 어린 아이와 엄마도, 눈시울을 적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다같이 손에 손을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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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우리 벗님들 놀아보세 놀아보세 

오월이라 서울 한강 그중에도 샛강공원 

찔레꽃 가득하니 향기로운 하늘 아래 

놀아보세 놀아보세 흥겹게 놀아보세 

박새 동생 수달 형님 위해주는 사람들과 

서로서로 지켜주고 보살피며 살아보세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지난 5월 18일 샛강예술공연이 하루 앞두고 불허 통보를 받아 취소되었습니다. 급히 대체 장소를 찾아 공연은 약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편지는 샛강숲에서 열린 공연을 상상하며 쓴 것입니다.)   

예술이 흐르는 샛강에서 

2024.05.23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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