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250_뱀딸기를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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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4-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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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250_뱀딸기를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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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의 뱀딸기 C.정지환)

초록이 뭉쳐지고 풀어지고 서늘해지고 미지근해지고 타오르고 사그라들고 번지고 야위는, 길이 휘어지는 숲가에 긴 나무 의자가 놓여 있고 

 

우리는 거기 앉았다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처럼

(조용미 시 초록의 어두운 부분 일부)   

초여름 저녁에 기웃기웃 숲을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다가 시를 읽습니다. 시집에는 꽃과 나무들, 숲과 바람이 자주 등장하지요. 이 여름에 더없이 어울리는 시구나 싶어요. 

 

저녁이면 혼자서 샛강숲을 걷곤 합니다. 이제 산책은 저에게 익숙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산책이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군요. 두 해 전 여름 호되게 병을 앓고 나서 더욱 그렇습니다. 나무들 아래 오솔길을 걷는 일은 건강을 지키기 위한 저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니까요. 

 

며칠 전에 지인이 초록의 어두운 부분이라는 이 시집을 보내줬습니다. 시인은 우리 은덕언니처럼 숲해설사라도 되는 걸까요. 꽃 이름 나무 이름을 아주 잘 알고 있군요. 모슬포라는 시는 이렇게 시작하네요.   

팽나무 멀구슬나무 우묵사스레피 까마귀쪽나무로 인해 너는 조금 살아났다 섬의 나무들은 왜 사철 푸르게 일렁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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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숲의 벌사상자꽃 C.신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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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숲의 석잠풀 C.신창기)

시인의 여러 시들에는 우리가 있고 당신과 나가 자주 등장하는군요. 어쩌면 시인은 자연에 빗대어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대체로 혼자서 산책을 합니다. 외롭지 않냐구요? 글쎄요. 외롭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시들을 읽고 나니, 혼자 걷는 한 중년여자의 모습이 조금은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초여름 숲에서 뱀딸기와 

올 여름 샛강숲에는 모든 것들이 왕성합니다. 하얀 벌사상자꽃과 보라 석잠풀, 그리고 붉은 뱀딸기들이 숲의 구석구석을 수놓았습니다. 저는 느릿느릿 걷다가 자주 걸음을 멈추죠. 

 

한 아이가 있습니다. 버짐이 군데군데 퍼진 얼굴, 뒤를 바싹 밀어 깎은 단발머리, 햇빛에 탄 팔을 흔들며 가느다란 다리로 걸어가는 아이. 아이는 오솔길에서 멈추어 섭니다. 초록으로 가득한 풀섶에는 사이사이 붉고 작은 보석들처럼 뱀딸기들이 달려 있습니다. 한 알을 따서 허기진 혀 안으로 뱀딸기를 밀어 넣습니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오래 견딘 뱀딸기는 희미한 물기와 밋밋한 맛으로 입 안을 맴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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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숲의 뱀딸기 C.정지환)

아이는 자주 외로움을 탔습니다. 시골에서 일곱 남매의 중간에 태어난 아이는 부모에게 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랐죠. 어린 남동생이 가진 것을 자꾸 부러워하고 똑같이 달라고 해서 아버지에게 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사방에 들어찬 여름의 소리가 적요를 깨우던 어느 여름날 오후에, 키 큰 관목 그늘에 앉았던 아이는 뱀딸기를 입에 물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걱정했어요. 세상은 여자아이에게 적대감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연두는 바람에 젖으며, 비에 흔들리며, 중력에 솟구쳐 오르며, 시선에 꿰뚫리며 

 

녹색이 되어간다 

 

웅크렸다 풀리며 초록의 세계로 진입하는 견고함이다

(조용미 시 연두의 습관 부분)  

아이는 잘 자라 어른이 되어 샛강숲을 걷고 있습니다. 시골의 자연을 떠나 도시에서 살지만, 자신을 잘 키워준 자연에 대해, 어린시절의 뱀딸기와 팽나무에게 고마움을 잊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시에 나오는 연두처럼 바람에 젖으며, 비에 흔들리며 녹색이 되었죠. 이제는 주위를 돌볼 줄도 알고 한결 너그러워졌어요. 

 

40년 전 그 아이는 샛강숲에서 뱀딸기 덤불을 서성입니다. 어릴 때는 살아갈 날들이 막막하고 두려웠지만, 세상에 나와보니 다정한 사람들이 있고, 또 도심 속에서도 묵묵히 삶을 이기며 살아가는 자연 속 생명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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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서 노는 아이들 C.이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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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나온 아이들, 환하다 C.이영원)

지난 토요일에는 한강유람단이 양평 남한강에서 카약을 타고 물소리길을 걸었습니다. 아침에는 더러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날이었는데, 유람단에는 어린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은 강과 숲에서 실컷 놀았어요.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저는 모릅니다. 지금보다도 더 자연이 없는 콘크리트 도시에서 살게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이였을 때 강에서 놀았던 추억은 오래오래 이 아이들에게 힘을 주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 힘으로 언젠가 다가올지도 모를 인생의 파고들을 너끈히 넘을 수 있겠지요. 

 

연두가 초록의 세계로 진입한 요즘, 날이 무덥습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고 시원한 여름 보내세요.   

2024.06.12
한강 드림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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