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 266_한강에서의 아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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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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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266_한강에서의 아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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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숙 선생님이 차려주신 음식들)

#인생은 고달파 

어제는 긴 하루였습니다. 

샛강 인문학 강좌인 맹자수업까지 마치고 집에 오니 시간은 밤 열 시를 넘겼습니다. 고양이들이 만들어 놓은 희미한 온기를 느끼며 집에 들어섭니다. 신발을 벗고 가방을 내려 놓으며 저도 모르게 아, 힘들다.라고 소리내어 말했습니다. 

 

인생은 고달파. 전에 읽은 모옌의 소설 제목도 떠올랐습니다. 가만 있자, 고달파가 맞나 고달퍼가 맞나. 그 와중에 맞춤법에 맞는 단어가 뭔지 헷갈려서 고달퍼 고달파를 중얼중얼 했어요. 마침 서가에 꽂힌 모옌의 책이 금방 눈에 띄어 인생은 고달파가 맞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아침에 샛강안내자 양성과정 1강을 해주러 오신 신진철 선생님이 크로노스의 시간과 카이로스의 시간을 설명했습니다. 어제 하루 동안 저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았고 무척 길고 좀 지치던 하루였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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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옌 소설 인생은 고달파 책 표지들)

오후에는 법원에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작년 겨울에 제가 피해를 당한 일과 관련된 것이었는데 판사는 오히려 저에게 힐난하듯이 따져 물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자꾸 떠올리기도 싫지만 작년에 샛강포럼 강좌에 와서 난동을 부린 남자가 있었습니다. 다짜고짜 저에게 반말로 너 이리 밖으로 나와.라고 말하고 자꾸 겐세이를 놓는 저 여자 버릇을 고쳐주겠다.라며 고성을 질렀습니다. 제가 일하는 직장에서 그것도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였습니다. 

 

그 날의 불쾌한 상황을 일일이 복기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런 것들, 경찰은 저에게 직접 폭행을 당하였는가 물었습니다. 저는 직접적인 폭행은 아니었지만 공포와 위협을 느꼈다고 대답했습니다. 제 나이 오십 줄에 생면부지의 남자에게 맞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공포를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저에게 에이, 강의장에 와서 누구나 질문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욕 좀 한다고 해도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기고만장한 이 남자는 그 이후에도 샛강에 나타나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하는 논습지에서 행패를 부리고 경찰을 출동시켰습니다 이런 사람에 대하여 공권력은 저를 보호해주지도 않을 뿐더러 그 남자가 반복적으로 하는 행패를 제지하지도 않습니다. 

 

살다 보면 여러 일들을 겪을 수도 있는 것이죠. 그리고 무도한 이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위협어린 욕을 좀 먹은 일이 뭐 대수이겠냐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퇴근할 때 그 사람이 어디 잠복했다가 나타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별별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자로서 살면서 겪었던 여러 폭력적 경험들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하루도 빠짐없이 일터에 나왔습니다. 저를 지켜주는 동료들과 한강에서 만나는 분들, 그리고 제가 지켜야 하는 샛강이 있으니까요. 은미야, 넌 참 용기있는 사람이 되었구나. 스스로에게 칭찬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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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년 국감 당시 임이자 의원 모습 C.국회방송) 

어제는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작년 국감 때 임이자 의원의 거짓 주장으로 인해서 우리 한강조합이 피해를 입은 일에 대하여 염형철 대표가 오마이뉴스에 기고했습니다. 기사를 읽으며, 지난 1년 동안 우리가 겪은 고생들이 줄줄이 떠올라 또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우리를 탈탈 털어 특별 감사를 실시하고, 회계검증을 다시 해서 보고서를 새로 만들어 보내오고 아무리 털어도 뭐 나오는 게 없으니까 비용 지급 시기를 문제삼아 150만원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다음 주로 다가온 국감 중에 임이자 의원이 자기 주장의 근거 (한강조합이 이권 카르텔이라는)로 삼으려고 하는지 시기에 맞춰 공문이 왔습니다. 

 

우리가 성실하게 산다고 세상 일이 다 순탄하지만은 않다는 건 압니다. 인간사 새옹지마이고 영어 표현으로도 ups and downs 가 있는 것이 인생사지요. 그래도 어제는 꽤 상심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하늘은 파랗고 날씨는 더없이 화창했는데도 그랬네요. 

 

#한강에서의 아보하 

오늘 라디오에서 아보하라는 단어를 들었습니다. 아주 보통의 하루라는 뜻이라는군요. 서울대 교수 누구가 내년을 움직일 키워드 중 하나로 꼽았다고 합니다. 아주 보통의 하루 한강에서 일하다 보면 아주 보통의 하루가 감사와 기쁨이 넘치기도 합니다. 

 

어제도 그랬습니다. 법원에서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돌아왔는데 김명숙 선생님이 눈앞에 나타났어요. 이제는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녀가 접시를 들고 저를 손짓합니다. 딱 달달한 것이 당길 시간이니까 하면서 국수가락처럼 생긴 젤리 접시를 내밀었습니다. 새콤달콤한 젤리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먹는 사이 근심도 녹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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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고운 선생님의 유종의 미 연주회) 

저녁에는 강고운 선생님이 피아노 연주회를 열어주었습니다. 그리운 금강산과 사랑으로 같은 신청곡도 연주해줬는데, 음치인 저도 조용조용 따라불렀어요. 이어서 강의를 듣기 위해 오신 반가운 얼굴들 설희 선생님은 저를 보더니 오늘은 학생 같아요.라고 옷차림을 칭찬해주시더군요. 제가 단정한 옷차림을 하느라 신경쓴 것을 알아봐주신 거지요. 

 

한강에 오시는 분들의 미소와 지혜로운 말들,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들을 나누는 일, 그리고 같이 공부하고 실천하며 성장하는 시간. 이런 것들이 한강의 아보하를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지난 주부터는 한강 교육위원회가 출범하며 한강의 아보하에 강교육도 추가했습니다. 강교육 토론회를 열었고, 강교육 축제로 시민들을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부터는 샛강안내자 양성과정을 시작하고 있어요. 

 

한강에서의 아보하를 함께 만들어주는 분들이 고맙습니다. 저 역시 누군가의 아주 보통의 하루를 지켜드리려고 조금 더 노력하겠습니다. 

 

이 가을, 당신의 아보하를 응원합니다. 

2024.10.03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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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조합 교육위원회 시작합니다. C.김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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