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 267_아버지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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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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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267_아버지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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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샛강숲길을 걷는 사람들 C.정지환) 

아버지 닮은 분을 보았어. 너무 닮아서 깜짝 놀란. 

 

지난 초여름 주말 아침에 샛강에 산책 나왔던 여동생이 자매들 단톡방에 사진을 한 장 올렸습니다. 멀리서 걸어오는 남자의 모습이었습니다. 흐릿한 남자의 모습은 얼핏 아버지를 닮아보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즐겨 입으시던 진청색 조끼, 늘상 쓰시던 모자, 반바지 차림으로 뽕나무 사이 길을 돌아 걸어오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시선은 주위 어딘가에 내려져 있었습니다. 

 

은애가 올린 사진을 확대해서 한참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아버지일리도 없는데, 정말 아버지 닮았다고, 아버지가 샛강을 걷고 있다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그리움과 충격으로, 자꾸만 사진을 보다가 눈물지었습니다. 

 

아버지는 작년 초여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아무래도 곧 돌아가실 것 같다고, 어서 제주에 내려와야겠다고, 은덕언니의 전화를 받던 샛강에서의 여름 저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노을 끝자락이 서둘러 자취를 감추며 어둑해지던 저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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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일과를 마칠 즈음, 종종 혼자서 샛강숲을 걷습니다. 여기저기 가늘게 피어난 쑥부쟁이들에게 눈인사를 하고, 말라가며 지친 듯이 보이는 나뭇잎들을 살피고, 나무 그늘 사이를 옮겨가는 직박구리나 박새,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는 까치를 봅니다. 땅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억새와 관목들, 쓰러지고 부러진 나무들을 보기도 하고, 고개를 들어 서쪽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합니다. 왜 서쪽 하늘인가 하면, 노을이나 해질녘 다양한 하늘의 표정을 볼 수 있기 때문이죠. 

 

혼자 걷다 보면 마음은 가라앉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떠오릅니다. 종종 아버지 생각도 많이 합니다. 작년에 아버지 아프실 때 노을지는 샛강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하던 순간이 어제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자식들 곁에서 가을과 겨울을 나게 해달라고, 그도 아니면 적어도 여름은 지나게 해달라고,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할 말미를 조금 더 달라고 하늘에 대고 기도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것이 이렇게 사무치는 것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미리 겪었던 이들은 왜 충분히 말해주지 않았을까 원망마저 듭니다. 생각해 보면 문학작품들에 그런 게 없지는 않은데도 말이죠. 작년에 읽었던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나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회고하는 소설들입니다. 감명깊게 책은 읽었는데, 그게 저의 이야기가 될 줄은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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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의자 

당신이 태어난 중산간 마을 낙천리에서 아버지는 결혼했고 일곱 딸아들을 낳아 길렀습니다. 밭농사를 지으며 억척스럽게 살았지만 40대 후반부터는 농사로만 먹고 살기 어려워 어머니와 번갈아 외지에 돈을 벌러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막일로 품을 팔아야 겨우 자식들을 먹이고 키울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는 저의 아이를 키워주러 서울에 오래 살았고, 그 시기 동안 당신은 혼자서 지냈습니다. 

 

동네에서 오래 함께 살아온 노인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뜨고, 외지인들이 더러 마을로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종종 아버지는 전화기 너머로 누가 죽었다, 누구는 농약을 먹었다 하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자식들이 찾아올 때는 아버지는 약속한 시간보다 훨씬 일찍 집 앞에 나와 있습니다. (아버지, 우리 갈게요, 하는 전화를 받으면 그 순간부터 바로 집 앞으로 나오셨던 것 같습니다.) 집 앞은 예전에 마을회관이 있었는데 지금은 마을회관이 마을 어귀로 옮겨가고, 그 자리에는 정자와 의자가 생겼습니다. 아버지는 먼나무가 심겨진 곳 의자에 앉아 계시다가 우리가 도착하면 팔을 번쩍 치켜들며 허허 웃습니다. 

 

집 마당에도 언제부터인가 의자가 하나 생겼습니다. 아버지는 그 의자에 앉아 마당을 오가는 우리들을 바라봅니다. 아버지는 집 안에 혼자 우두커니 있기 싫을 때 그 곳에 앉아 텅 빈 고요한 주위를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나마 작년 봄에는 제비들이 와서 새끼들을 키우고 나갔습니다. 그 제비들이 아버지에게 어느 정도 기쁨을 주었을 거라고 짐작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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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 강가에 둘 의자들 C.염형철)

#중랑천의 의자 

중랑천 강가에 의자를 몇 개 설치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자 감사하게도 몇몇 분들이 의자 기부를 해주셨습니다. 강고운 선생님이 딸을 위하여, 임설희 선생님이 손자를 위하여 의자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김정순 선생님이 돌아가신 사촌언니와 생일을 맞은 남편을 위해 의자를 기부했습니다. 

 

저에겐 어머니 같은 분이셨어요. 사촌언니를 회고하며 정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 저는 아버지 의자 생각이 났습니다. 자식들을 기다리며 앉아 계시던 의자, 외롭고 적적한 시간을 함께 해주던 의자, 그리고 자식들이 왔을 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식들과 함께 앉았던 정자의 의자까지 

 

저도 중랑천에 아버지 의자를 하나 두려고 합니다. 그 의자를 놓아 두면 어느 고적한 저녁에 우리 아버지가 앉아 계실 것만 같습니다. 때로 제가 그 의자에 앉아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아버지 잘 계시지예? 고마웠수다, 하고 흐르는 강물에 말하기도 할 것입니다. 

 

이렇게 또 가을이 깊어갑니다. 

 

곁에 아버지가 혹은 어머니가 계시다면 손을 잡아드리고 같이 산책이라도 해보시면 어떨지요. 서늘한 가을 공기가 마음까지 청량하게 해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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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 강가에서 

2024.10.10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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