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 271_산들의 의자 세연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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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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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271_산들의 의자 세연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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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 세연과 산들 C.함정희)

#산들의 의자

더운 날이었어. 11월 초였는데도 한낮에는 햇살이 따가웠어. 강가 가까이 만들어둔 꽃밭에서는 늦여름부터 피어나던 백일홍들이 여전히 환한 얼굴로 무리지어 서 있었어. 노란 산국과 보라 쑥부쟁이도 어울려서 향기를 풀어놓았어. 작은 벌들과 나비들이 행복에 취해 사뿐사뿐 돌아다녔지.

 

강가에서 반팔을 입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어. 남자들과 여자들이 땅을 파고 돌을 골랐어. 땅은 순순하게 포근한 품을 내주었지. 남자들이 묵직한 통나무 의자들을 수레에 옮겨왔어. 잘 다듬어진 통나무들은 여전히 물과 숨을 머금고 있는 것만 같아. 나이테가 그려진 위로 손바닥을 쓸면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어쩌면 내내 내리쬐며 지켜보는 해님 때문인지로 몰라. 여자들과 아이들도 모여들어 나무를 영차영차 밀었어. 삽으로 흙을 퍼서 나무 주위를 덮었어. 금새 의자가 자리를 잡았어.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서 의자들 사이를 뛰어다녔어. 발차기도 해보고 할머니와 함께 의자에 앉아보기도 했어. 할머니는 나에게, 이건 산들이 의자야, 하고 귓속말처럼 말씀하셨어. 의자에는 내 이름이 적힌 작은 금속판이 붙여졌어. 할머니와 나 사이에 우리 둘만의 소중한 비밀이 생긴 것만 같았어. 산들 의자 앞에서 나는 태권도 시범을 보였어. 할머니가 한 번 해보라고 하셨어. 마침 오전에 태권도 승급 심사에서 당당하게 합격했기 때문이야. 둘러선 어른들이 박수를 쳐주었어. 할머니는 “우리 산들이” 하며 안아주셨어. 더운 날이었어. 땀이 났지만 기분이 좋았어. 억새들이 손짓하는 강가 옆에서 뛰고 놀았어. 물고기는 첨벙거리고 새들은 유유자적 노닐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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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과 산들 의자 C.함정희)

#할머니가 산들에게

산들아, 우리 산들이가 어른이 되고 세월이 많이 흘러서 말이야, 언젠가는 아버지도 되고 할어버지도 될 거야. 언젠가 산들이는 할머니가 없는 세상을 살겠지. 그 때 산들이가, 할머니 없는 세상을 살아가다가 말이야, 할머니 생각이 나면 이 곳에 와서 이 의자에서 쉬다 가면 좋겠어. 이건 할머니가 산들이에게 주는 선물이니까.

 

어른이 되어 살다 보면 외롭고 힘든 날이 오기도 할 거야. 어떨 때는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몰라. 이럴 때는 할머니는 어떻게 했을까, 할머니에게 물어 보면 뭐라고 하실까… 세월이 흘러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 산들이에게 살아가는 일에 대한 말을 건네줄 수 없을 때, 그 때 여기 강가에서 의자에 앉아서 쉬렴. 조급해할 필요가 없단다. 산들아. 어려운 일들은 다 끝이 있게 마련이거든. 여기서 바라보는 저 강물들하고 똑같아. 결국 다 흘러가 버리지? 세상사도 그런 거란다. 그 순간에는 그게 전부처럼 보이지만, 지나고 나면 그럭저럭 견딜만할 때도 있어. 산들이를 너무나 사랑하는 할머니가 미래의 산들이를 위해 의자를 여기 둘게. 산들이가 살아갈 삶을 위한 할머니의 기도, 염원, 연민 그 모든 것들을 담아서 의자를 둘게.

 

산들아, 기억해. 윤슬이 반짝이고 강물이 찰랑이던 이 가을 오후를, 할머니와 함께 웃고 뛰어 놀고, 사람들과 같이 의자를 놓고 나무를 심던 이 시간을 기억해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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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들이와 임설희 할머니 C.함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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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에서 나무 심는 사람들 C.백은희)

#세연의 나무

극지연구소에서의 이른 아침, 나는 희미한 바람 소리와 새소리에 잠이 깹니다. 핸드폰을 켜자 나의 참느릅나무가 보입니다. 바람이 나무 끝자락 이파리들을 조금씩 흔들고 있습니다. 박새 한두 마리가 부지런히 나무 사이를 오갑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커피를 내리고 간단한 요가 동작으로 스트레칭을 합니다. 오늘 서울의 날씨는 구름이 많고 비가 조금 내리겠군요.

 

엄마와 함께 심은 참느릅나무는 잘 자랐습니다. 벌써 20년이 흘렀군요. 나무를 심을 때 나는 열 살이었습니다. 11월 초 어느 맑은 날, 엄마와 나는 중랑천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한강 사람들과 함께였어요. 그날은 유난히 더웠습니다. 나보다 키가 큰 참느릅나무를 심던 날, 나무를 옮기고 땅을 파고 돌을 골라내며, 이마로 흐르는 땀을 닦았던 감각이 지금도 선연하니까요. 사람들은 강가에 천막을 치고 테이블을 내어 예쁜 테이블보를 깔았습니다. 산국과 백일홍을 몇 송이 꺾어 장식하고 커피와 물, 과일과 샌드위치, 쿠키 같은 것들을 펼쳐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많이 웃었습니다. 통나무 의자를 나르면서도 까르르, 삽질을 하면서도 까르르, 음식을 먹으면서도 하하호호, 정순 할머니 할아버지가 팔짱을 끼고 의자에 앉아도 하하호호. 우리 엄마는 나의 나무를 심는 일이 열성이었습니다. 나무에는 ‘정세연 나무’라고 작은 이름표도 달았습니다. 그 나무는 한강 사람들의 꾸준한 관심과 돌봄으로 늠름하게 자랐어요. 나도 역시 엄마와 가족들, 한강 사람들의 관심과 돌봄으로 잘 자라 어른이 되었습니다. 한강과 함께 자란 나는 자연스럽게 환경문제에 관심이 컸고, 그 여정이 나를 남극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나의 나무는 멀리 있지만, 또 나와 가까이 있습니다. 참느릅나무의 실시간 영상이 저의 핸드폰이나 노트북 또는 어떠한 디지털 기기로도 원하기만 하면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오늘도 나의 참느릅나무가 나를 깨워줍니다. 11월이라 그런지 붉은 색과 갈색으로 단풍이 들었군요. 어라. 동박새가 두 마리 날아왔네요. 서로 다정하게 나란히 앉아 있군요. 동박새를 보니 어쩐지 첫눈이 올 날도 멀지 않은 기분이 드는군요. 새들이 서로에게 나누어주는 그 온기가 정겹습니다. 커피를 마셔야겠습니다.

 

20년 후의 중랑천 강가에서 참느릅나무와

2024.11.07

한강 드림

(이번 한강편지는 산들과 산들 할머니, 그리고 세연이의 마음을 상상해서 쓴 글입니다. 지난 11월 2일 중랑천 강가에서 소망의자와 나무심기 행사에 함께 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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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에서 세연이와 김정순 선생님 부부 C.백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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