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연의 나무
극지연구소에서의 이른 아침, 나는 희미한 바람 소리와 새소리에 잠이 깹니다. 핸드폰을 켜자 나의 참느릅나무가 보입니다. 바람이 나무 끝자락 이파리들을 조금씩 흔들고 있습니다. 박새 한두 마리가 부지런히 나무 사이를 오갑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커피를 내리고 간단한 요가 동작으로 스트레칭을 합니다. 오늘 서울의 날씨는 구름이 많고 비가 조금 내리겠군요.
엄마와 함께 심은 참느릅나무는 잘 자랐습니다. 벌써 20년이 흘렀군요. 나무를 심을 때 나는 열 살이었습니다. 11월 초 어느 맑은 날, 엄마와 나는 중랑천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한강 사람들과 함께였어요. 그날은 유난히 더웠습니다. 나보다 키가 큰 참느릅나무를 심던 날, 나무를 옮기고 땅을 파고 돌을 골라내며, 이마로 흐르는 땀을 닦았던 감각이 지금도 선연하니까요. 사람들은 강가에 천막을 치고 테이블을 내어 예쁜 테이블보를 깔았습니다. 산국과 백일홍을 몇 송이 꺾어 장식하고 커피와 물, 과일과 샌드위치, 쿠키 같은 것들을 펼쳐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많이 웃었습니다. 통나무 의자를 나르면서도 까르르, 삽질을 하면서도 까르르, 음식을 먹으면서도 하하호호, 정순 할머니 할아버지가 팔짱을 끼고 의자에 앉아도 하하호호. 우리 엄마는 나의 나무를 심는 일이 열성이었습니다. 나무에는 ‘정세연 나무’라고 작은 이름표도 달았습니다. 그 나무는 한강 사람들의 꾸준한 관심과 돌봄으로 늠름하게 자랐어요. 나도 역시 엄마와 가족들, 한강 사람들의 관심과 돌봄으로 잘 자라 어른이 되었습니다. 한강과 함께 자란 나는 자연스럽게 환경문제에 관심이 컸고, 그 여정이 나를 남극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나의 나무는 멀리 있지만, 또 나와 가까이 있습니다. 참느릅나무의 실시간 영상이 저의 핸드폰이나 노트북 또는 어떠한 디지털 기기로도 원하기만 하면 볼 수 있기 때문이죠. 오늘도 나의 참느릅나무가 나를 깨워줍니다. 11월이라 그런지 붉은 색과 갈색으로 단풍이 들었군요. 어라. 동박새가 두 마리 날아왔네요. 서로 다정하게 나란히 앉아 있군요. 동박새를 보니 어쩐지 첫눈이 올 날도 멀지 않은 기분이 드는군요. 새들이 서로에게 나누어주는 그 온기가 정겹습니다. 커피를 마셔야겠습니다.
20년 후의 중랑천 강가에서 참느릅나무와
2024.11.07
한강 드림
(이번 한강편지는 산들과 산들 할머니, 그리고 세연이의 마음을 상상해서 쓴 글입니다. 지난 11월 2일 중랑천 강가에서 소망의자와 나무심기 행사에 함께 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