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 273_룸 넥스트 도어, 너의 곁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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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봉이 될 뻔한 로이
“이모, 로이 생파 가세요?”
며칠 전에 채린이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로이 생파를 한다고? 듣지 못했는데? 이렇게 대답하고는 곧 로이 엄마인 은애에게 물었습니다. 두 살이 된 로이를 위해 생일파티를 할 예정이고 특별히 추르 케익도 주문했다고 하더군요. 은애는 일찍이 남편이나 아들 생일에도 반짝이 장식을 하는 따위 정성을 들인 적이 없던 터라 다들 너털웃음을 지었습니다.
동생 은애가 데리고 사는 고양이 로이는 작년 봄에 동생네 가족이 되었어요. 원래 키우던 집에서 더 키울 수 없다며 데려갈 사람을 찾았습니다. 아직 어리고 하얀 털이 소복한 로이 사진을 보고 다들 너무 예쁘다며 감탄은 했지만 누구도 선뜻 데려가겠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은애는 저보고 키워보겠냐고 묻다가 결국 자기가 데려오더군요. 이름을 우리에게 제안하라고도 했는데, 저는 춘봉이를 제안했어요. 봄에 온 좋은 (프랑스어로 Bon) 존재라는 뜻으로 춘봉이라고 하자고 했죠. 은애는 괜히 역정을 내더니 나중에 미국에 가서 살 수도 있다면서 영어 이름으로 로이라고 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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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를 데리고 온 다음 은애의 삶은 무척 바빠집니다. 로이는 산책을 즐겨 해서 퇴근하고 나서는 꼭 산책을 시켜주어야 합니다. 로이는 집에 있는 식물들을 엎어버리거나 먹어치워서 식물들 대부분을 없앴습니다.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길고 하얀 털을 남기기 때문에 끝없이 털을 제거해야 하지요. 무척 귀찮고 고단한 일임에 틀림이 없는데, 로이 이야기를 할 때 은애는 생기가 넘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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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앙 곁에 서서
생택쥐페리 소설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달라고 부탁한 것은 다들 아실 거예요. 서로를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것이죠. 조금씩 익숙해지고,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고요. 고양이 로이를 생각하면, 로이가 은애를 길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처럼 어쩌면 길고양이로 버림받을 수도 있었던 고양이가 한 사람의 삶에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 중랑천 강가에서 구조한 고양이 랑랑이가 가족이 된 이후에 제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서로 길들이는 관계가 된 것이죠. 은애처럼 유별나게 챙겨주지는 못하지만, 랑랑이 잘 먹고 잘 자는 일, 아프지 않고 무탈하게 지내는 일이 저에게 무척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 한강조합이 성동 원앙축제를 한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우리 곁의 새들과 관계를 맺기 위함이었어요. 바삐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일상에서 중랑천에 온 새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 그 야트막한 강물에, 커다란 교각 아래, 듬성듬성 있는 모래톱에, 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것조차 잘 모릅니다. 새들은 그저 희미하게 풍경의 일부로만 존재하지요.
그럴싸한 명분과 후원이 넉넉해서 축제를 연 것은 아닙니다. 그저, 우리 곁에 원앙과 같은 여러 야생동물들이 함께 살고 있어요 하는 그 말을 사람들에게 하고 싶어서 만든 축제였습니다. 지난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중랑천에서 생태 보호 활동을 하면서 우리 한강 사람들은 그곳에 힘겹게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을 눈여겨보게 되었습니다.
그들 곁에서 그들의 삶을 지켜봅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새끼들을 낳아 키우고, 잘 살아내려는 동물들의 모습에 감탄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어집니다. 그들 곁에 머무는 동안, 그들의 생동, 아름다움, 자연스러움에 감동하고 기쁨을 얻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 존재들이 우리 곁에 이렇게 살고 있다고 봐 달라는 것이 이번 축제의 취지였습니다. 그래서 슬로건도 ‘야생동물들도 #성동에 살아요’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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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화 명숙 종인 고운 정희 향희 권식
경화는 축제 아침에 일찍부터 도라지생강차과 뜨끈한 국을 끓입니다. 축제에서 온종일 수고할 한강 식구들과 나누어 먹을 요량입니다. 축제에 온 아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곰곰이 생각합니다. 명숙도 황태무국을 푹 끓이고 보온병에 담습니다. 체험부스를 돌아다니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없나 살핍니다. 종인 할아버지는 손주가 할아버지 사진 보러 찾아온다고 해서 온종일 얼굴에 웃음이 걸렸습니다. 잠깐 사이에도 곁의 중랑천에서 물총새가 먹이를 낚아채어 먹는 사진을 찍습니다. 미영은 원앙 모양의 달고나 사탕을 하루 종일 만들고 있습니다. 옆에서는 붕어빵을 굽는 부부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붕어빵 하나에 왜 천원이나 하냐고 따지듯 물어봅니다. 미영이 천원 중 몇 백원은 수달과 원앙을 살찌우게 한다고 일러줍니다.
세연은 성중달을 대신하여 성동구민증을 받았습니다. 원앙 원더랜드를 안내하는 고운 엄마를 따라다니기도 하고, 갖가지 체험부스를 돌아다니며 노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릅니다. 정희는 오가는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눈인사를 하고 안내를 해줍니다. 사이사이 딸이 만들어준 원앙 달력에 눈길을 줍니다. 멀리 네덜란드에서 작가로 활동하는 지영이는 중랑천을 지키는 엄마가 자랑스럽습니다. 지영이는 엄마의 꿈을 언제나 지지하고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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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인은 사진전을 보러 온 분들에게 말합니다. 수달이 원앙이가 말하는 건 아주 조그만 땅입니다. 큰 공간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공간이라도 마음 편히 살게 해달라고 말한다고, 성원랑과 성중달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수정과 혜진, 형철과 재희, 재혁과 정민, 선영과 권식, 향희와 두림, 락희와 평수, 영원과 정원, 로맨과 박반장, 명희와 재학… 원앙 곁에 서서, 원앙과 새들의 곁을 지켜주고 싶어서 지난 주말 내내 성동 원앙축제에서 헌신한 많은 이들의 이름이 끝없이 떠오르네요. 고맙고 고맙습니다.
근래 <룸 넥스트 도어>란 감동적인 영화를 봤습니다. 죽음에 대한 영화인줄 알았는데, 삶에 대한 이야기였고, 곁을 지켜주는 담담한 사랑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는 원앙과 수달, 흰죽지와 넓적부리들 같은 생명들에게 옆방에 사는 친구처럼 곁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추워지는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여러분의 룸 넥스트 도어에서
2024.11.21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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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_한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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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게 노랗게 물들었네???? 빨갛게 빨갛게 물들었네???????? 파랗게 파랗게 높은 하늘 가을 길은 고운길????
노랫말이 참 예쁘지요?
활활 타오르듯 온 천지가 단풍과 낙엽에 덮인 늦가을의 들판은 넋을 놓고 바라볼 만큼 황홀합니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고 걸으면 바사삭 바사삭 얇은 감자칩 밟는 소리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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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추천도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숲>입니다. 숲, 꿈, 숨, 책, 결, 돌, 흙, 비, 밤, 새, 달, 빛, 물... 숲해설가로, 책방지기로 살아온 조혜진 작가님의 소소한 이야기가 담겨진 책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숲>은 8월 한강살롱에서 주제로 다루었던 책이기도 합니다. 한강살롱에서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이 책을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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