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선생님들께,
어제 목요일에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어요.
공교롭게도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을 연상하게 하는 1212 날짜였고, 대통령이라는 이의 기이한 담화가 있던 날이었으며,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불꽃 같은 함성들이 솟구치던 날이었지만, 저는 한강 작가와 전날 있었던 <작별하지 않는다> 강연에 대한 생각들만 하려고 했어요. 뭔가 집중하고 싶었으니까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 길을 명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들의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폭력의 반대편인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여러분과 함께, 문학을 위한 이 상의 의미를 나누고 싶습니다.”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중에서)
맞아요. 한강은 위와 같은 말을 했어요. 아침밥을 먹으며 영어로 말하는 수상 소감에 귀를 기울였죠. 그는 분명 영어로 폭력의 반대편이란 (to violence) 말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The Nobel Prize란 사이트에는 그 단어가 빠져 있었어요. “I would like to share the meaning of this award, which is for literature, with you – standing here together.”
맞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짐작해봤어요. 노벨위원회에 연설문을 줄 때에는 ‘폭력의 반대편에’라는 말을 안 썼을 것이다. 그러다가 한국의 계엄 상황 이후에 그가 일부러 이 단어를 추가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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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노밸문학상 수상한 한강 작가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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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편지를 쓸 겨를이 없었어요. 오전에 출근하는데 갑자기 대학 친구 정은이의 연락을 받았죠.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장례식을 치른다고. 멀리 남해까지 다녀와야 했어요. 올라오는 차편이 없어서 자가용을 운전해서 다녀왔어요. 밤에 보는 남해대교의 화려한 불빛과 잔잔한 바다를 힐끔 쳐다보며, 같이 가던 친구와 “이게 조문이 아니라 여행이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말을 나눴죠. 집에 돌아오니 새벽 한 시가 다 되었네요. 밤잠이 없는 고양이들이 거실로 나와 저를 맞이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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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을 하는 한강 ⓒ. The Swedish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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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무얼까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 ‘빛과 실’ 부분 인용)
노벨문학상 시상식이 있던 이번 주에는 줄곧 한강을 떠올렸어요. 그의 나직하지만 뚜렷한 말, 그의 눈빛, 스카프를 두르고 검은 드레스를 입은 그의 옷차림, 물잔을 만지던 그의 손길, 그리고 오랜 세월 여러 번 읽던 그의 문장들…
<한강에서 한강 읽기>를 지난 한 달 동안 네 차례 했어요. 그가 수상 기념 강연에서 말했듯이, 그의 작품들은 마치 연작소설처럼 서로 이어져 있죠. 제주 4.3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를 쓸 때 그는 두 가지 물음을 갖습니다.
왜 세상은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왜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운가?
소설 속 인물들인 경하와 인선은 고통의 바다 아래에서 힘껏 불꽃을 붙입니다. 꺼트리지 않고 나아가려고, 죽지 않고 살아가려고, 생명의 편으로 나아가죠. 한강은 이 소설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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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장례식장에서 만난 정은이는 그래도 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말합니다. 아버지가 의식이 있었을 때, 잘 키워주셔서 고맙다고, 덕분에 잘 자랐다고, 그런 말들을 여러 번 할 수 있었다고 해요. 작년 여름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저 역시 그랬습니다. 기력이 없어 누워계시던 아버지의 거칠고 두툼한 손을 잡고 여러 번 말씀드렸죠. 아버지, 고맙수다예. 아버지 덕분에 공부도 하고 이추룩 잘 살암수다. 한강에서 대표로 일하멍 좋은 일 햄수다. 다 아버지 덕분이우다. 고맙수다 아버지…
아버지는 알겠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희미하게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어쩐지 쑥스러워서 자꾸 고맙다는 말만 하다가 나중에는 미안하다는 말을 더했죠. 당신 평생의 아픔을 외로움을 그리움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해 미안하다는 뜻이었어요.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버지를 얼마나 사무치게 사랑했는지 알게 되네요. 이 사랑의 힘으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폭력의 반대편에서 연대하고 손을 잡으며 살아가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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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정희는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선 강바람에 손끝이 시렸어요. 우리는 토요일 이른 아침에 중랑천에 모였어요. 봄을 준비하고 싶었거든요.
노랑 빨강 하양. 봄이 되면 우아하게 피어날 튤립들을 준비했어요.
구근을 심기에는 지금이 딱 좋은 때라고 했어요. 땅이 얼기 전에 어서 심어야죠. 우리는 천오백 개에 달하는 구근을 심었어요. 진희 샘이 뜨거운 보리차를 가져왔어요. 밖은 이토록 차가운데 보리차는 어찌나 뜨겁던지요. 데이지 않으려고 후후 불며 조심하며 마셨죠.
엄마, 한국은 정말 괜찮은 거야? 네덜란드에 사는 딸이 자꾸만 카톡을 보내오네요. 지영아 괜찮아. 우리 국민들은 45년 전의 국민들이 아니야. 경찰과 군인들도 옛날의 경찰과 군인들이 아니야. 한강 작가도 말하잖아. 그들의 소극적인 듯한 모습이야말로 적극적인 선택이었노라고. 사람들을 공격하거나 폭력으로 제압하지 않으려는 적극적인 행동이었노라고.
꽃피는 봄이 올까, 추운 겨울에는 꽃을 상상하기가 어렵죠. 봄이면 어김없이 꽃을 보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꽃을 심었어요. 봄을 당기려고요. 구근을 다 심고 나서는 우리도 다같이 거리로 나섰어요. 폭력의 반대편에 함께 서 있어야 하니까.
평화를 빕니다.
2024.12.13
한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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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_한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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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3 한밤중에 기습적으로 발표된 비상계엄으로 인해 얼마나 놀라셨어요. 전 국민이 밤잠을 설치고 45년전의 마지막 비상계엄이었던 12월 12일이 소환되었었지요.
작년에 상영됐던 <서울의 봄>도 다시 회자됐구요.
오늘이 마침 12월 12일 이네요.
그래서 오늘은 그와 관련된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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