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 277_하늘나라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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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hangang 등록일2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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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277_하늘나라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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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금 소장님의 부산 동구에서의 활동 영상 캡쳐)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 전문)

 

당신…… 벌써 그리운 당신. 당신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나직이 불러봅니다. 당신을 떠나보내고 돌아온 밤에 허수경 시를 찾아서 읽습니다.

 

어제도 흔한 겨울 날이었습니다. 점심은 분식으로 든든히 먹었습니다. 그냥 가볍게 분식이나 어때요? 김밥과 라볶이 같은 것들, 선영과 재희와 함께 나서며 제가 말했죠. 분식집에 가면 오히려 이것저것 시키게 되더군요. 결국 김밥과 라볶이, 우동과 오므라이스까지 고루 든든하게 먹었습니다. 우린 가볍게 먹는 게 안 된다니까요. 선영의 웃음기어린 말에 깔깔 웃으며 포만감에 차서 사무실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차갑던 공기도 어쩐지 누그러져 보이고, 겨울 햇살이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와 눈이 좀 부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문자를 받은 건 그 순간이었습니다.

김연금님 동생입니다. 오늘 오전 누나가 이 세상 놀이를 끝내고 하늘 나라로 떠났습니다. 하늘엔 재밌는 놀이터가 없어서 좀더 일찍 올라간 것 같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누나가 아프지 않은 곳에서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마지막 가는 길 함께 배웅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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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금 소장님 활동 사진들 ⓒ.김연금)

믿기지 않았습니다. 워낙 부지런한 당신이 분명코 뭔가 멋진 행사를 만들어서 초대하는 문자를 보냈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이 세상 놀이를 끝내고 하늘 나라로 떠나셨다는 소식을 남동생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탄식과 함께 눈물이 났습니다.

 

당신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온 밤, 당신의 얼굴, 당신의 나직한 목소리, 당신의 유난히 까만 눈동자, 겸손하고 조용하게 움직이던 몸, 단단하고 정확한 말들, 공원이나 놀이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톤이 살짝 높아지며 열정적이던 모습까지. 또 당신과 함께 먹었던 밥, 당신의 문장들, 책… 우리는 평생 술은 먹을 생각을 하면 안 돼요. 대표님은 괜찮아요? 무리하면 안 되니 너무 열심히 하지 말아요, 하고 염려해주던 말들. 하다 못해 어느 명절에 당신이 직원들 나눠 먹으라고 보내줬던 꿀스틱까지 두서없이 떠올랐습니다.

 

3년쯤 전에 위암 수술을 받고 항암을 했던 당신은 주위에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다 좋아지고 나서야 가까운 이들에게 말을 했죠.

사업을 하니까요. 혹시라도 영향을 줄까 봐서 알리지 않았어요.”

22년 여름 한강 창립행사에 왔을 때 당신이 한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옥상 정원에 앉아 채식 도시락을 먹었어요. 도시락이 참 예쁘다고 감탄하며 사진도 찍고, 담긴 음식들을 천천히 먹었습니다. 아직 많이 걸으면 피곤해요. 조금만 둘러보고 갈게요. 당신은 샛강숲 어귀만 둘러보고 떠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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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상상하다. ⓒ.김연금)

2018년 한강 창립 때부터 당신은 한강조합의 이사로서 참여했습니다. 공원에 대하여, 아이들의 놀이터에 대하여 당신이 꾸는 꿈이 있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이루어가는 분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얼마 전에는 당신이 부산 동구에서 골목 놀이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영상을 봤습니다. 동네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놀이터를 만드는 것이 당신이 가장 역점을 둔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놀면서 자라고, 건강하게 꿈을 꿀 수 있도록 당신은 정말 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작년 이맘때 샛강포럼에서는 ‘공원을 헤엄치는 붉은 물고기’를 소개해줬어요. 그 덕분에 우리들은 샛강숲 어디쯤 동동 날아다니는 붉은 물고기를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 동생이 말한 것처럼 하늘나라에는 재밌는 놀이터가 없는 것이 걱정이 되었나요? 어서 가서 하늘나라 아이들에게 놀이터를 만들어주려고 했나요?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면 당신 얼굴이 떠오르겠지요. 어느 맑은 날, 뭉게구름 너머로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이 만든 하늘나라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멀리서 오겠죠.

 

그리운 당신, 그동안 모든 게 고마웠습니다.

당신의 안식을 기원하며.

 

2024.12.18

한강 드림

(12월 17일 오전에 한강조합의 이사이기도 한 조경연구소 울 김연금 소장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애도하는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습니다.)

이주의_한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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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1(토)이 동짓날이라 한 여름 해가 가장 길었던 하지날로부터

그동안 해가 지속적으로 조금씩 짧아졌다가 밤이 가장 긴 이 동짓날을 기점으로 다시 낮이 조금씩 길어지는 시작점이라


예로부터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날로 한 해 동안 액운을 막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정화해서 건강과 화합을 비는 팥죽과 정화주를 빚어 동네에소 동지제를 지내기도 했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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