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씨의 한강편지 279_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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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admin 등록일25-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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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씨의 한강편지 279_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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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일상을 소망하며 ⓒ.석락희)

한강 선생님들께,

새해 잘 시작하셨는지요?

 

저는 어쩌다 보니 연말까지 이런저런 회의다 문서 작업이다 하며 좀 바쁘게 보냈습니다. 힘들지는 않지만, 이렇게 연말까지 바쁜 건 옳지 않은 것 아냐? 하고 스스로에게 물었죠.

 

친구들은 종종 저에게 일을 줄여라, 한강은 행사가 너무 많다, 건강이 최고이니 절대 과로하지 말라 등등 잔소리를 해요. 저에게는 한강의 행사가 일이라기보다 노는 것 같아서 수월하게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요즘 저를 꽤 즐겁게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바로 스쿼시인데요. 걷기만 할 게 아니라 제대로 운동을 해야지 싶어 한 달 반 전에 등록을 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강습을 받습니다. 서브를 연습하고 간단히 게임도 해요. 시간대는 아무 때고 갈 수 있어서 편리합니다. 점심 시간에 간단히 있는 것들 먹고 (결과적으로 보통 점심보다 더 많이 먹게 되더군요.) 운동을 가기도 하고, 퇴근하고 나서 저녁에 가기도 합니다. 일을 몰아서 하고 한적한 오후에 가기도 하고요.

 

회원들은 대부분 30대 전후로 보입니다. 제가 훨씬 나이가 많죠. 주위 사람들에게 스쿼시 친다고 했더니, 무릎은 괜찮아요?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네. 그럴 나이죠. 살도 빼야 하고요. 아직까지는 무릎도 괜찮고, 젊은 회원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럭저럭 잘 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재미있는 것은 아들 또래이거나 아들 형님 정도 되어 보이는 강사가 (당연히!) 반말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쳐라 빨리 뛰어라 자세 똑바로! 하는 말을 수없이 하는데 그런 말을 고분고분 듣습니다. 강사가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게 되죠.

 

왕초보 운동선수인데도 새삼 스포츠란 무얼까 그런 생각도 합니다. 스포츠는 순수하구나, 그런 생각이 먼저. 같이 뛰는 회원들은 한결같이 친절합니다. 연습 게임을 할 때 파이팅을 서로 외쳐주죠. 좋은 샷을 치면 칭찬도 해주고요. 제가 할머니 나이가 되어도 꾸준히 해서 대회에 나갈 수 있는 선수가 되어볼까 하고 꿈꿀 정도로 열의에 불타고 있습니다. 스쿼시를 치면 운동 그 자체도 좋지만, 잡생각을 잊는 것도 좋습니다. 운동을 하는 시간만큼은 산적한 일들도 잊고, 계엄과 탄핵도 잊고, 불친절하거나 무례한 사람들도 잊고, 앞으로의 걱정도 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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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연주에 감사하는 경화 샘 ⓒ.신석원)

#애도와 기원의 해맞이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김광규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일부)

 

샛강에서 3년째 해맞이를 하고 있습니다. 샛강은 낮은 곳에 있고 해는 높이 솟은 건물들을 다 지나서 떠오르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낮고 느린 해맞이’라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23년 해맞이 때는 제가 어설프게 굴과 메생이를 넣어 떡국을 끓였습니다. (군말없이 드셔준 분들이 새삼 고맙네요.) 작년에는 그걸 본 박경화 샘이 떡만두국을 만들어 대접해 주셨습니다. 새해에는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살짝 고민을 했습니다. 지난 12월 정치 상황이 암담하고 혼란스러웠으니까요. 매일같이 마음이 갑갑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죠. 많은 분들이 그러셨을 거예요. 그러던 중에 경화 샘이 카톡을 주시더군요.

 

대표님 참 우울한 날들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세상이 괜찮게 변할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있습니다.

 

올 한 해도 한강조합과 함께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새해 해맞이 때 따듯하게 먹을 떡만두국을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새해 첫날 이른 아침에 샛강센터에 도착하니 잠긴 센터 앞에 그는 벌써 와 있었습니다. 작년은 40명 정도가 왔으니까, 올해는 70인분을 준비하셨다 합니다. 누구보다도 성실한 직장인인 그는 퇴근하고 나서 밤에 70인분의 만두를 일일이 빚었을 테죠. 피곤했을 텐데 말입니다. 고기를 안 먹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별도로 굴떡국도 끓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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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떡만두국을 나누다. ⓒ. 신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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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석 연주를 하는 어린이 ⓒ.신석원)

구름이 있어 해돋이는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들은 샛강문화다리 위에서 해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것들을 했습니다.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을 시작으로 새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작년의 아픔과 슬픔을 겪으면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분들, 건강하자는 말씀, 민주주의를 잘 지키자는 약속, 주위 분들의 안부를 챙기자는 다짐까지, 여러 고마운 약속과 조심스런 희망의 말들이 오갔습니다. 여의못 앞에서 소원지를 걸고 주위에 환해지는 빛 속에서 노니는 청둥오리들과 왜가리에 눈맞춤을 했습니다. 그리고 센터에 들어와서는 시를 낭송하고 피아노 연주를 듣고 덕담과 선물을 나누었습니다.

 

여기서 해돋이를 볼 수 있나요? 주변에서 서성이며 물어보던 사람들도 샛강의 밥상에 초대했습니다. 저희가 가도 되나요? 주저하던 젊은 커플이 한강조합에 와서 정성 가득한 경화 샘의 떡만두국과 아침에 갓 뽑아 온기가 남은 백설기 떡과 귤을 먹었습니다. 그들은 익히 오던 분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맛있게 드시더군요.

 

고운 샘의 연주에 이어 인천에서 온 어린이도 즉석에서 피아노를 쳤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라서 좀 서툴기도 하고 중간중간 끊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한강 선생님들은 아이의 긴 연주가 끝날 때까지 숨을 죽이고 오롯이 집중하시더군요. 어른들의 뜨거운 박수에 아이가 으쓱합니다.

 

새해에도 한강조합은 그런 곳이고 싶습니다. 슬프고 지칠 때에도 밥을 먹으러 올 수 있는 곳, 그냥 왔는데 선물 같은 환대가 일상적인 곳, 좋은 일이 있으면 같이 기뻐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 자연이 좋고 자연에 깃든 생명들이 좋아서 지켜주는 일을 하고 싶어지는 곳…

 

오늘 해맞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간 정성후 샘이 올려준 시로 새해인사를 전합니다.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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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느린 샛강 해맞이 ⓒ. 석락희)

새해인사      - 나태주

 

글쎄, 해님과 달님을 삼백예순다섯 개나

공짜로 받았지 뭡니까

그 위에 수없이 많은 별빛과 새소리와 구름과

그리고

꽃과 물소리와 바람과 풀벌레 소리들을

덤으로 받았지 뭡니까

 

이제, 또다시 삼백예순다섯 개의

새로운 해님과 달님을 공짜로 받을 차례입니다

그 위에 얼마나 더 많은 좋은 것들을 덤으로

받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게 잘 살면 되는 일입니다

그 위에 더 무엇을 바라시겠습니까?

 

2025.01.01

한강 드림

이주의_한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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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5년 새해 둘째 날이고 직장인들은 새해 첫 출근일이지요.

끝까지 다사다난했던 2024년이 가고 이제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새해가 되면 소귀 신영복 선생님의 글 <새해의 지혜와 용기 >

가 생각납니다

"지난 한 해의 고통은

잊어버리는것이 삶의 지혜고

그것을 잊지않고 간직하는것은 용기"

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잊고 무엇을 간직할지" 생각해 보시되

한 획의 실수는 다음 획으로 감싸는 너그러움도 또 한 가지고 새해의 둘째 날, 일상의 처음을 시작하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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